우애(友愛)는 일반적으로 형제 자매간 또는 친구 사이의 사랑이나 정분을 말하고, 정분은 정에 넘치는 따뜻한 마음 또는 사귀어 정이 든 마음이다. 또한 우애는 형제간의 정애(情愛)에서 나아가서 널리 가족 등 동일 집단을 결합하는 정애, 인간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서 감싸는 인간 상호의 형제애를 의미하며, 박애, 이웃애와 동의어이다. 이런 우애의 관념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근대 이후 가장 명확한 관념으로 제도화된 것은 서구의 경우이다.   우애의 관념이 라틴어의 프르테르니타스(fraternitas)에서 온 프라터니티(fraternity)라는 말로 이용된 것은 12세기 경부터이며, 박애, 인류애( philanthropy)라는 말이 그리스어나 라틴어 필란트로피아(philanthrōpia)의 역어로서 이용된 것은 17세기 이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말을 상호 상대에게 좋은 것을 바란다는 점에서 동류의 유덕한 인간끼리의 친애, 정의 뜻으로 이용했는데 거기에는 노예를 제외한 시민 사이에서, 인간은 같은 큰 가족의 일원이라는 관념이 있으며, 이런 인간 동료에 대한 공감적 우애로서의 인간애(philanthrōpia)라 하였다. 이런 인간애는 인류가 온당한 삶을 영위 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므로 우리의 부모들은 자고로 자식들이 우애 있게 지내기를 바라고 또한 그것을 강조해왔다. 그만큼 우애가 가정화목에 중요한 변인(variables)이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자녀를 낳지 않거나 한 자녀 가정이 늘고 있어서 형제 자매간에는 우애가 필요 없는 말로 사라질까 걱정되고 있다. 우애는 친구 사이에도 꼭 필요 되는 말이다. 형제가 없어서 평소 서로가 따뜻한 정을 나누며 우애 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보니 그것을 친구 간에 정분을 나누는데 선행학습의 결핍으로 우애의 전의(transfer)가 일어나지 않아서 비사회적 이기성을 띤 자아가 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사회생활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비친화적인 고립된 삶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우애만사성(友愛萬事成)’이란 말까지 등장하여 우애 있게 생활하는 것을 바라고, 또 그렇게 되도록 가르쳐 왔다. 퇴계 이황은 우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추연 우성전의 아버지 우언겸이 안동판관으로 왔을 때 퇴계가 인사하러 갔다. 퇴계가 인사말을 하지 못하고 애통하게 우는 모습이 마치 초상집 분위기 같았다. 퇴계는 오래도록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말하기를, “성주(城主, 안동판관)께서 형님을 위해 그토록 보호해 주셨으므로 은혜에 감사하나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이제야 뵙게 됐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형 온계가 평안도 갑산 적소로 귀양 갈 때 금부도사 판관이 우언겸은 억울하게 매를 맞아 걷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 온계를 민가에 들어가게 하여 약을 쓰고 쉬게 하였다. 온계는 지금 미아리의 민가에서 운명하였으나 퇴계는 우언겸 도사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위의 다섯째 형 찰방공 징(澄)에게 퇴계가 대하는 예를 보고 추연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선생께서 형님 댁에 가시면 찰방공에게 밥상을 선생님께 먼저 드렸다. 선생은 간절히 사양하시면서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선생은 ‘저는 형님이 계시는데도 형님한테 자제(子弟)의 도리를 다 못하고 있습니다.” 퇴계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형제가 일체라고 하지만 마음이 하나가 안 되면 일체가 될 수 없다. 어느 한쪽을 서운하게 하면 평화는 깨어진다. 또 형의 흠은 나의 흠이고 동생의 흠은 나의 흠임을 알아야 한다.”   형제가 허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고 김성일이 퇴계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그때 퇴계의 대답은“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성의를 다해서 느끼고 깨닫게 해야 한다. 절대로 의리를 해쳐서는 안 된다. 형을 원망하고 잘못을 들어 나무라도 안 되고, 동생이라고 정면으로 꾸짖어도 안 된다. 형제는 늘 서로 조심하고 자기 체통을 다 지켜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라고 퇴계는 가르쳐 주었다(권오봉, 2018).   퇴계는 김성일이 형제의 허물에 대한 물음의 답으로, 성의를 다해 깨닫게 해야 하고,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말며 서로가 조심하고 체통을 지키면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라 하였다. 형의 흠은 나의 흠이고, 동생의 흠이 나의 흠이라는 일체의 마음가짐이며,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말고 먼저 성의를 다해 깨닫게 해야 한다는 퇴계 선생의 교훈적인 우애에 관한 말은 가을 하늘 밝은 달처럼 우러러 명심해야 할 말씀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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