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살아있는 글씨, 제 생각과 철학, 감성이 담긴 저만의 필획을 어떠한 형태와 생동감으로 펼쳐낼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석운(石芸) 최경춘 서예가의 서화전 ‘筆舞墨想: 붓으로 춤추고 먹으로 명상하다’가 4일부터 16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대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예 인생 40년을 통과하면서 2018년 개인전에 이어 6년 만에 다섯 번째 작품전을 여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크게 1부:필무(서예작품)와 2부:묵상(회화작품)으로 구성돼 서예 59점, 문인화 59점을 선보인다. 그의 생동하는 필획과 회화적 조형은 118점 전체를 일관하고 있어 ‘서화동원(書畵同源)’에 기인한 창작의 진가를 보여준다. 지난 1일 작업실인 유오재에서 만난 최 작가는 호방한 기개와 함께 부드럽고 섬세한 문인적 관록이 무르익은 풍모였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예술세계도 완숙해진 정점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 작가는 “쉰을 넘기고 첫 번째 개인전이다. 최고 중요한 시기이자 완숙기라고 생각하지만 잘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이번 전시에선 가급적 인공미를 배제했다. 먹은 물로 조절해 스며들게 하고 손으로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림의 일부인 화제에서 충분히 기세를 표현했다”며 감상 포인트를 짚어 주었다. 작품 목록을 통해 6년간 쓰고 그린 작품을 1년 동안 수습해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는 그는 ‘6년 만에 전시한다’는 자신과의 원칙을 이번에도 지켰다. 이는 서예가의 길을 걷는 시대상 속에서 작가는 ‘늘 새로워져야 한다’는 자신과의 힘겨운 전투의 방증으로 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많은 글씨들을 선보이며 그간의 작업을 내세울만도 한데, 키워드만 뽑아 간결하게 작품에 녹였다. 논어, 맹자, 주역 등 고전은 물론, 향가 등의 시가 문학 등과 자작시를 비롯, 지표로 삼을 만한 경구나 교훈적 글을 작품으로 꽃피웠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서예와 문인화, 한문학까지 두루 섭렵해 서화이론까지 겸하며 40여 년간 학문과 서화에 침잠하며 가르치는 일도 30년 넘게 해왔다. 최 작가는 글씨를 통해 그림을 표현하고 그림을 통해 글씨를 창작한다. 글씨와 그림 사이의 묘한 경계에 놓여있는 그의 작품은 한층 유연하고 현대적인 해석을 낳는다. 글씨에선 붓글씨의 시작인 갑골문과 끝 지점인 초서까지 능란하게 구사해 마치 붓이 춤을 추듯 흥취가 절로 난다. 그림에선 수묵에 고요히 스며들어 명상에 빠지게 한다.경기대학교 서예학과 장지훈 교수(한국서예학회 회장)는 최 작가의 서화 세계를 ‘필무묵상(筆撫墨常)’, ‘활물서예(活物書藝)’, ‘문심회화(文心繪畵)’로 요약한다. 먼저 ‘필무묵상’은 매일의 일상에서 시와 고문을 연구하고 그것을 학(學)에만 그치지 않고 공유하고 예술적 전환과 실천으로 시습(時習)하면서 진정한 서화가의 길을 걷고 있으니 ‘붓을 어루만지고 묵향에 젖어 사는, 바로 ‘筆撫墨常’의 실천자로 평했다. 이어 ‘활물서예’는 기본적으로 전서의 운필과 조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서예는 때로는 맑고 때로는 텁텁하며 때로는 부드럽거나 거칠며 때로는 둔중하거나 탄력적인 양단의 필획을 구사하는 것에서 발현된다고 했다. 그의 서법적 특징은 전서뿐만 아니라 갑골과 금문 16점, 소전 5점, 전예 1점, 예서 18점, 해서 1점, 행초서 14점, 한글 4점에서 한문 오체와 한글, 문인화에도 투영됐다. 절제미가 단연 돋보이는 그의 작품에선 ‘정형화’보다는 살아있는 생명처럼 꿈틀대고 움직이고 변화하는 생동이 넘친다.그 예술적 성취 위에 수십 년 연마한 인문학적 지성이 더해져 감동은 배가 된다. 특히 추사 김정희가 많이 시도했던, 전서와 예서가 융합되거나 여러 서체가 어우러진 이른바 ‘잡체(雜體)’의 작품들이 눈에 띤다. 이는 창의적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석운의 응용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손꼽힌다.또 ‘문심회화’는 일반적인 동양화에서 보여지는 화풍과도 다르며 전통적인 사군자 중심의 정형화된 문인화풍과도 차별성이 강한 그의 문인화에 대한 평이다.일상에서 늘 접하는 소재나 경물, 나아가 몽환적 자연현상까지 다룬 이번 출품작 59점의 그림마다 소재, 구도, 기법, 화제 등에서 개별성이 뚜렷하며 한 점 한 점에 각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리듬감 있는 간결한 필획과 그 필획을 감싸는 수묵의 번짐효과는 입체감을 자아내고 그림과 어우러진 화제는 고풍스러운 문인의 심미적 정취를 증폭시킨다. 이런 특징을 지닌 최 작가는 그래서 다시 ‘필무묵상(筆舞墨想)’의 세계에서 노닌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선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처럼 각고의 수행과도 같은 연마 끝에, 머뭇거림 없는 일필휘지를 통해 생동감을 불어넣고 다양한 골기와 필획 및 먹색 변화로 풍부한 조형성을 이끌어내며 수묵 경계를 형성해 무한한 변화와 다양성을 머금고 있는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그는 40년 글씨 쓰고 30년 가르치면서 깨달은 것은 바로 ‘서예는 필선’이라고 말했다. 후학들의 지침이 될 수 있는 ‘필세와 묵성’을 강조한 것으로, 필세가 없는 발묵은 진정한 발묵이 아니며 필세를 돋보이게 하는 발묵이야말로 필세의 경지라고 말했다. 문학박사이기도 한 최경춘 서예가는 현재 한국전각협회 이사, 한국서예학회 이사, 국제서예가협회원, 경북문화재 전문위원,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서예 교수, 유오재서예연구소 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서예가다.    중국서화명가정품전 초대작가, 2005년과 2017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본 전시 초대작가 등으로 불국사 나가당 성타 대종사 다비식 만장, 경주시 시정 구호, 문무대왕릉 표지석, 양동마을 유네스코 표지석 등에 휘호를 남겼으며 경북문화관광공사,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등에 다수의 작품이 소장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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