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다눈도 없고 코도 없다밑 빠진 나날 입도 없다 입도 없다아아 사랑했던 너의 얼굴도 없고 기차도 없고 다리도 없고건너야 할 다리도 없고 오늘도 없다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쓴다시를 어떻게 쓰나망할 놈의 시를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없는 얼굴이 나를 감싸면 없는 해가 생기고 없는 풀이 생기고 없는 시가생길 테니까없는 내가 마침내 없는 기차를 타고 없는 너를 찾아 가면 얼마나 좋을까그런 걸 믿고 살아 온 게 말짱 애들 장난 같고그런 걸 믿고 살아온 게망할 놈의 시시 같다! -이승훈, '망할 놈의 시'   아이쿠 '이 망할 놈의 시' 어떻게 쓰나, '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쓴다', '시를 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자인 시인의 탄식처럼 들리는 이 시는, 유명한 시인인 이승훈의 시다. 시 속의 화자는 시인이다. 괜히 없는 시를 붙들고 지난 세월을 도깨비 장난에 춤추고 온 것은 아닌가 하고, 그렇게 살아 온 자신의 삶이 애들 장난 같다고 시인은 탄식한다. 시란 놈은 원래 '눈도 없고 코도 없다.' 시란 놈은 空이었다가, 色이었다가 저것이 아니었다가 이것도 아니었다가, 결국 시라고 말하는 순간 시가 아니요, 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도 시가 아니다.   이 망할 놈의 시는 '건너야 할 다리도 없고 오늘도 없다' 없는 것도 아닌, 있는 것도 아닌 세계가 바로 시 세계다. 보이는 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닌 경계가 시다. 들리는 것도 아닌, 들리지 않은 것도 아닌 세계가 시 세계이다. 시는 정의 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시는 용기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다', '눈도 코도 밑빠진 나날의 입도 없다', '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인은 시를 쓴다'   '망할 놈의 시'는, 시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이승훈 시인의 시론이 담겨 있는 시다. 시인은 단순히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고, 시를 사는 사람이다. 이 시는, 반성적인 시쓰기의 태도가 보이는 시인의 진솔한 고백이 드러난 작품이다. 시는 언어로 지은 집이다. 또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는 의미를 떠날 수 없다. '없는 내가 마침내 없는 기차를 타고 없는 너를 찾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망할 놈의 시를 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걸 믿고 살아 온 게 망할 놈의 시/ 시 같다!', '시 같다!' 이 통쾌한 반전을 보라. 마지막 반전 부분이 이 시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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