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 편집국장남아프리카의 조용한 나라, 말라위의 어느 밀림 마을. 이곳에서 인간과 코끼리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밀림이 말라 들어가자 코끼리는 물과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인근 마을로 내려왔다. 주민들은 야생코끼리의 출몰에 아연실색했다. 코끼리들이 비축한 식량을 털어가는 것은 물론 농경지를 훼손하자 주민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마을을 습격한 코끼리는 인명을 해치기까지 했다.  주민들은 급기야 정부에 코끼리 사냥을 요구했다. 코끼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이 반대했다. 밀림 속 야생 코끼리는 말라위의 중요한 관광자원이므로 코끼리를 몰아내 버릴 경우 관광객이 급속하게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떨어뜨리고 가는 달러가 사라질 경우 주민들의 삶은 심각하게 피폐해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중재안을 내놨다. 야생 코끼리를 사냥해 개체수를 줄이는 것보다 비교적 식생이 양호한 인근 밀림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결국 코끼리들을 모두 마제티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그곳은 마을로부터 4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어서 결국 광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기고 말았다. 가뭄이 끝나고 밀림의 식생이 회복되자 주민들은 코끼리를 다시 돌려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게는 6t 가량 되는 코끼리를 다시 옮기는 것은 사실상 힘든 일이라며 정부가 주민들의 요구를 거부했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고 마제티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겨우 적응해서 살아가는 코끼리의 생존 환경을 흩트릴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일이지만 남의 일 같지 않다. 경주 시민들이 정부의 문화재정책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많이 닮았다. 문화재 정책의 유지와 개정은 뜨거운 감자다. 시민의 삶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문화재로 인한 각종 족쇄를 걷어내 버리고 싶지만 한번 훼손되면 복원하기에 쉽지 않은 도시 환경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다. 정부의 고민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경주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왜 이처럼 아우성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조상이 물려준 천금 같은 유적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지붕 수리도 못하고 수세식 화장실도 만들지 못했다. 시가지는 높은 빌딩 한 채 짓지 못해 올망졸망한 건물들로 꽉 차 있고 걸핏하면 각종 규제에 묶여 제대로 된 재산권 행사도 못했다. 경주시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밤문화가 거의 사라진 것도 이상하다. 어느 도시의 도심이든 밤이 되면 화려한 일류미네이션으로 치장하고 식당과 주점이 북적거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활기가 차다. 그러나 경주는 구시가지나 신개발지나 도심이라고 일컬을 만한 곳이 없다. 조금이라도 밤이 늦어지면 불이 꺼지고 인적이 끊긴다. 삽시간에 생기를 잃어버린다. 관광객들이 와서도 밤이면 찾아갈 곳이 없다고 지청구를 해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이 문화재 정책에 대해 삿대질을 해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먹고 살 길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고 관광이고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다. 시민들의 이 같은 요구와 정부의 정책이 공히 만족할 만한 대안은 없을까?  시민들이 요구하는 대로 문화재정책을 완화한다면 그나마 유지하던 경주시의 매력이 금방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경주의 정체성은 문화역사관광도시다. 상업도시도 공업도시도 아니다. 결국 정체성을 포기해야 하는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경주시민의 열악한 삶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결국 정부의 통 큰 결정이 필요하다.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끌고 가되 시민들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국책사업을 대폭 늘리고 지역개발 사업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관광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본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주민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경주를 제대로 살리는 일은 결국 국가의 문화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일이다.  시민들도 무조건적인 문화재법 개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말라위의 주민들과 같은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 경주가 가진 경쟁력 있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없는 신라문화의 유려함이 도처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동차 회사 수십 개를 가진 것보다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일이며 속된 말로 경주시민은 알부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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