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바다가 주 서식지인 혹등고래가 적도 부근 따뜻한 바다에 와서 새끼를 낳고 다시 새끼를 데리고 고향 바다로 돌아가는 BBC 자연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어미 혹등고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북쪽 바다로 돌아가는 동안 자신은 아무 것도 먹지 않는..
대한민국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또 한 번 무너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특혜 채용 문제가 드러나면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닌, 부모의 권력과 연줄이 채용을 결정하는 구조라면, 이는 단순한 채용..
재래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장 한복판에서 가느다란 두 다리에 검은 비닐 장화를 신은 장애인이 한 손으론 땅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작은 손수레를 밀며 장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입추가 지났으련만 날씨마저 몹시 추웠다. 이 때 오토바이를 몰던 중년 남..
고종의 승하는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어고종 선황제께오서 1919년 1월 21일 승하하시엇다. 향년 66세이더라. 전하는 그토록 바라시던 조선의 주권을 되찾지 못하고 한스러이 가시었다. 점심 나절 식혜를 잡수시었는데 독이 든 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에 독살설은..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산 12번지에 가면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경재 하연(1376~1453) 선생의 묘가 있다. 그는 1389년 14살에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포은 정몽주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면서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야망 때문이 아니라 백..
지난 12일 맞았던 정월 대보름은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이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빚 독촉도 안 한다는 큰 축제일로 상원(上元) 혹은 오기일(烏忌日)로도 불린다. 정월 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삼국유사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소지왕 마립간..
내 정신의 벼랑 끝에선아름다운 여자그녀는 하나의 질문이다내가 안간힘으로 다가서면아득히 물러나고돌아서면 안타깝게 손짓하는매혹의 눈빛보일 듯 말 듯 미소하며가파른 벼랑 길을 소요하는 여자그녀를 바라보면 나는벼랑 끝에 매달린 한 잎의 어둠하늘에는 별빛 가득한데내 가슴을 뛰게..
인간 사회에 있어서, 같은 사람들 사이에 가장 불공평하게 대접받는 것은 차별이다. 차별은 차(서로 다른 정도)가 있게 구별하는 것이다. 키 큰 사람과 키 작은 사람과의 차이는 있어도 키 작다고 차별해서는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한 예로, 미국 사회의 고민거리는, ..
날씨가 따스해졌다. 거실을 정리하면서 석류나무를 내놓았다. 까칠한 줄기가 겨드랑이며 얼굴을 사정없이 할퀸다. 다 좋은데 꼭 이놈의 가시가 말썽이라며 지하실 계단을 오르내린다. 뻐꾸기 소리가 뜸해지면 봄도 얼추 끝난다. 오줌 갈기를 내쏘듯 하는 서슬에 거미줄은 성글어..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을사년 새봄에 파면될 수도 있고 생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최후진술에 파면을 상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때는 국민 여러분께서 새 대통령을 선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여기서 저는 그동안 몇 번이나 밝혔던 계엄의 불가피성과 대통령 고..
지난해 10월 10일에 경순왕의 제삼왕자인 경주군 영분공 원소(園所)에서 시제(時祭)를 봉행할 때, 불국사 아래 마을에서 영업하는 K부추떡집에 제수용 본편과 송편 등을 주문하였다. 매번 깨끗하게 정성껏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부탁을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떡집 사..
눈만 뜨면 온갖 정보와 마주한다. 그야말로 그것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볼거리, 읽을거리가 참으로 다양한 세상이다. 그 양 또한 어마어마하다. 이를테면 정치, 문화, 세상사, 의학, 요리 등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많은 양은 기억..
우리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말한다. 그러나 일어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반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엄격히 보아 잘..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산 1-14번지에 가면 조선 중기의 문신 약봉 서성(1558~1631)과 부인 여산송씨의 합장묘가 있다. 그는 1586년(선조 19) 문과에 급제한 후 6개 도의 관찰사와 3조의 판서, 사헌부 대사헌, 판중추부사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인..
새해 새 아침이 따로 있다더냐?신비의 샘인 나날을네 스스로가 더럽혀서연탄 빛 폐수를 만들 뿐이지어디 헌 날, 낡은 시간이 있다더냐?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 아침을 새 아침으로 맞을 수가 없고결코 새날을 새날로 맞을 수가 없고너의 마음 안의 천진天眞을 꽃 피워야비로소..
인간사회에 있어서 사람에게는 대중(군중) 심리란 것이 있다. 대중 심리는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자제력을 잃고 다른 사람의 언동에 쉽사리 따라 움직이는 충동적인 심리를 말한다. 그리고 잠자코 있으면 바보 취급을 당할까봐 인정받기 위해 잘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
70년대 초인 30대에 상경하여 서울 종로에 소재하는 중등학교 정교사를 역임하면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이수하여 두 개의 학위를 취득하고 38세에 여자고등학교 교감을 발령받아 두 해 근무한 후 81년 초에 대학교수로 환향하였다. 계고(稽考)해 보면 그 10년이란 세월..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운명'을 읽습니다. 부다페스트에 사는 열네 살 소년 죄지르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다른 유태인 소년들과 함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로 끌려갑니다. 아우슈비츠를 거쳐 독일 부헨발트와 차이츠 수용소에서 강제노역..
시뮬라크르 가상공간(假想空間) SNS는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가고 있다. 아날로그 세계는 특정한 장소에 붙박혀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물들은 보관하고 꺼낼 수 있지만, 가상공간은 TV처럼 두께가 있고 무거운 4각형 틀이 필요 없다. 0과 1로 이루어진 시뮬라크르..
올해는 입춘 추위가 유난스러웠다. 이른 아침,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고 써 붙였지만, 뭔가 잘못 돌아가는 요즘 세상처럼 입춘이 지난 뒤에도 눈이 내리고 너무 추워 마음도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좀 풀리고 이젠 새봄도 멀지 않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