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국교는 조로아스터교였다. 그러다가 아랍의 이슬람 세력으로 말미암아 페르시아 제국 가운데 문화적으로 가장 풍성했던 왕조가 무릎을 꿇고 만다. 결국 무너진 왕조의 왕족들은 깊은 오지로 숨어들거나 이웃나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그 가운데 아브틴 왕자는 그를 따르는 왕족을 대동하고 중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 서사시 `쿠쉬나메` 주인공 아브틴은 처용일까? 그러나 새롭게 페르시아를 차지한 이슬람 왕국의 외교적 마찰을 견디지 못한 중국은 아브틴 왕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망명지를 알선해 주는데 그곳에 바로 신라였다. 아브틴은 신라로 망명와 신라왕의 공주인 프라랑과 결혼을 하게 되고 이슬람 세력에 의해 학정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페르시아 회복을 다짐하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귀국길에 낳은 페레이둔이라는 왕자는 훗날 이슬람 자하크왕을 퇴출하고 페르시아를 되찾는다. 이 이야기는 고대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쉬나메`에 주된 내용이다. 10만 여구에 이르는 방대한 서사시의 반틈 이상이 아브틴이 신라에서 보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쿠쉬나메`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이란의 역사학자와 문화학자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쿠쉬나메`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학자가 바로 보수기 교수다. 보수기 교수는 `쿠쉬나메`의 주인공인 아브틴이 `처용설화`의 주인공 처용과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다. 보수기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울산의 처용암을 방문했을 때 나왔다. 처용암 앞에서 처용설화의 내용을 듣던 보수기 교수는 무릎을 쳤다. 그는 처용설화의 주인공인 처용이 동해에 출현하는 대목을 들으며 흥분했다. 처용이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는 설화의 내용이 `쿠쉬나메`의 주인공 아브틴의 이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아브틴은 `물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동해를 통해 신라로 망명한 아브틴의 출현과 겹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 신라의 실크로드 출발점 학술적 증명 필요해 보수기 교수는 "처용설화에서 대왕(헌강왕)은 용왕의 아들이 서울에 오게 된 것을 기쁘게 여기며 처용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해 주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도 줘 서울에 정착할 수 있게 했다는 대목은 쿠쉬나메에 전해지는 아브틴의 궤적과 유사하다"며 "처용설화의 이야기는 쿠쉬나메에 등장하는 신라의 왕이 왕자를 보내 유민들을 이끌고 바다를 통해 신라로 망명한 아브틴을 영접해 서울로 데려오고 그의 딸 프라랑 공주와 혼인시켜 귀히 여겼다는 1000년 전 페르시아 서사시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말했다. 5년 전 경주에서는 `쿠쉬나메`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된 적이 있다. 보수기 교수가 시민들을 상대로 `화백포럼`에서 `쿠쉬나메`를 중심으로 한 신라와 페르시아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에 걸쳐 얘기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 서사시를 바탕으로 동화도 만들어지고 넌버블 퍼포먼스도 만들어지는 등 스토리텔링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다가 지금에 와서 다시 시들해졌다.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쪽 출발점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학술적 활동은 이쯤에서 멈췄고 경주는 중요한 문화적 동력 하나를 놓치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는 어떤 방식이었을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역사는 없다. 그러나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서 발견되는 많은 유물이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것이 분명하다는 보수기 교수의 주장은 `직접 교류설`에 무게를 더해준다. 그것이 해상 실크로드였든 육상 실크로드였든 고대 신라는 세계 최강제국 페르시아와 적극적인 교류 국가였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경주가 문화적으로 국제도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이 점은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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