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작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최근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아트테크가 급부상하면서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 미술시장의 활황을 주도하는 갤러리가 경주에도 있다. 바로 갤러리 라우(송 휘 대표, 55)다.    송휘 대표가 갤러리 문을 연 지 14년째. 송 대표는 말 그대로 ‘화상’으로 물이 올랐다. 최근 미술시장의 동향과 흐름을 간파해 전국 미술시장에서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갤러리 개관 이후 처음으로 미술시장 초호황을 만났다는 그는 차근차근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아하기만 할 것 같은 갤러리 대표라는 자리는 짠내나는 노력과 끈질긴 근성으로 점철돼 왔다. 지방에 있는 갤러리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국내 굴지의 갤러리로 성장시킨 그의 성공 스토리에는 힘겹게 ‘버텨온’ 고단한 여정도 함께다.   송 대표는 2009년 미술시장 불모지인 경주에서 전문 갤러리 ‘라우’를 개관했다. 당시 무모하리만큼 당찬 도전이었지만, 작가이기도 했던 그의 순수한 열정이 돋보이던 시절이었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미술 공부도 계속하는 등 갤러리 이름만으로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동국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학과 및 경북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한 역량 있는 작가기도 하다. 현재까지 국내·외 개인전 9회 및 50여회의 각종 국내·외 아트페어 및 기획(단체)전 등에 참여한 바 있다.    또 2013~2016 아트경주 운영위원, 운영총괄감독 등 중책을 역임하며 경주아트페어를 정착시키는가 하면, 각종 기획과 컬렉터를 아우르며 경주 문화발전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송 대표는 동국대학교 미술학과 외래교수, 대구예술대학교 미술학과 외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 큰마디병원 갤러리 등의 전시 기획·운영, 한국 화랑협회 회원 등으로 활약중이다. 그는 최근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있다. 유명 작가들 작품에 대한 수요는 넘쳐나는데 인기 작가의 경우 작품 제작 시간 6~7개월은 기다려야 작품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송 대표의 경우, 이미 기존 고객 확보가 돼 있음에도 인기 작가의 작품 구매는 하늘에 별따기다. 극사실적으로 사과를 그리는 윤병락 작가의 경우, 주문만 해도 몇 년 치가 밀려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작품을 줄 수 없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노크해 6개월을 기다려서 결국은 고객에게 작품을 전달했다. 그 한 점 확보를 위해 새벽 일찍 일산 작업실에 직접 가서 작품 받아 서울 사는 고객 만나 작품 전달하고 경주로 내려오는 식”이라고 한다.   송 대표는 또 “고객들이 작품구매를 선주문한다는 것은 예전에는 있을 수 없는, 상상도 못하는 이야기였다. 이제는 다반사다. 소비자가 원하는 작품을 연결시키면서 고객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게 작가와 고객의 중간 역할자로서의 갤러리 역할”이라면서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고객 감동으로 전달되면서 그 고객은 다시 재구매로 인연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며 활짝 웃는다.   최근엔 MZ세대를 중심으로 연예인 팬클럽 생기듯 작가에게도 팬클럽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MZ세대를 홀리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각종 아트페어 오픈 몇 시간 전부터 줄 서 기다리는 경우는 흔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MZ세대들이 현대미술 차세대를 예감하는 신진작가를 SNS를 통해 스타작가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이 급부상하면서 미술시장 트렌드를 크게 바꾸고 있다. 경주에도 아티스트 네임 ‘감만지’라는 작가가 유명하다. 이 작가와의 전시 성사가 번복돼 무산된 경우도 있다”면서 MZ세대가 스타작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 작품은 더 받기 힘들고 지방 갤러리는 더욱 불리하다고 했다. 송 대표는 갤러리를 열면서 당연히 지역 작가들 위주의 전시를 선보였다. 지금까지 100여 명의 지역 작가 전시를 열었다고 한다.    그는 “초창기엔 직원 월급 줄 돈도 벌지 못했다. 당시 대학교 강의 두 군데 뛰면서 제 월급 받아 직원 월급 주는 식이었다. 작품도 거의 팔리지 않아 경주 고객으로만 갤러리를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국내외 아트페어에 뛰어들었다”면서 지금은 안정적으로 전화 주문도 받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그는 개관 3년째 갤러리를 내놓으며 큰 위기를 맞았다. 갤러리는 팔리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은 더욱 힘들었고 감내해야 했다.    ‘그럴 줄 알았다. ‘경주에서 갤러리는 무슨 갤러리’’ 이런 말들을 들으며 오기가 생겼었다. ‘해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고는 국내는 물론 독일, 프랑스, 미국, 홍콩, 일본, 스위스, 두바이, 중국 등 유명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단번에 영역을 확장시켰다.   송 대표는 “일 년에 서너번은 해외로 나갔다. 어떤 지역에는 네 번씩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세계 미술시장 흐름과 안목을 키웠고 그런 와중에도 대학 강의를 10년 하면서 버텼다”고 회고했다. 세계 미술 흐름을 보고 와서 국내 유사한 작업을 하는 작가를 발굴해 키우기도 한다.   가장 큰 보람으로는 2013년 경주 아트페어 창립을 꼽았다. 이미 세계 미술시장에 참여해 경주미술시장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던 그였다.   당시 미술시장 불모지였던 경주시의 반대가 많아 설득한 지 2년 만에 겨우 시작됐다. 총괄 감독을 하면서 경주 시민들에게 미술시장을 접하게 하고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은 큰 보람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겐 힘든 기억도 있다. 한창 해외 아트페어를 다닐 때 당시 어린 둘째 아들을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2011년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 당시 아들이 길을 잃어버려서 혼비백산하고 현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찾았던 일이다.   “난리가 났죠. 아들을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어요”라고 회고하는 그의 눈엔 얼핏 눈물이 고였다.   그렇게 송 대표를 따라 미술시장을 다니던 아들이 성인이 돼 앞으로 그의 뒤를 잇겠다고 했단다. 갤러리 라우의 분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갤러리 라우는 사막에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미술시장 불모지였던 경주에서 뚝심과 성실함으로 경주 대표 갤러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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