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때 손잡아줄 당신이 있어…나는 행복합니다” 꽁하게 열 안받니더. 마음에 넣어놓고 안사니더 “저 만날라면 힘드니더. 24시간 바쁜 사람이라서. 비오면 오전에는 시간 되니더” 비가 오기만을 고대했다. 온다는 비는 안오고 하늘은 사뭇 개일 분위기다. 좋은 것은 귀담아듣고 나쁜 것은 흘려버리고 위를 쳐다보면 하루도 못산다고 지난 세월 생각하면 눈물나서 이야기도 못하겠다며 말문을 연다. 호프집 컵 씻는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신문배달, 광고전단지 돌리기, 식당일, 우유배달 등 안해본 일이 없다. 경주시청 한켠에 구두수선 미화센터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계신 김순옥님(47세). 남편이 조금 덜 아프면 나와서 앉아있기도 하는데 요즘은 그 조차도 힘들다고 한다. 7년전쯤 당뇨로 판명 받고 투병중인 남편 박종팔님(52세)이 교통장애자사무실에서 활동하다가 받은 표창장이 미화센터 가운데에 걸려 남편을 대신하고 있다. 열심히 살다보면 볕들 날 있겠죠 서비스정신이 몸에 배인 김순옥님은 시청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일찍 일을 시작하고 오후 4시면 또 다른 일터로 향해 밤 12시까지 일하지만 아침에 눈 뜨면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단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악착같이 벌어서 어디다 쓰냐며 입을 대지만, 잘 걷지도 못하고 약으로 연명하는 시어른들(75세, 70세)과 투병 중인 남편, 아들, 딸 모두 돌봐야할 그의 몫이다. 은행 문 앞에도 못가보는 빠듯한 생활이 계속 되다보니 먼 일을 대비할 엄두도 못낸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될까해서 남편이 하던 미화센터 일을 자처해서 도왔고 아픈 남편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일한 지가 벌써 삼년이 넘었다. 신용하나는 백지수표 “이유 없이 늦은 적 한번도 없고 일단 약속을 했으면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생겨도 미련없이 포기했다. 어떤 일이든 내일처럼 했기 때문에 일거리가 없어서 고민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평소 운동하기 좋아해서 마음 힘들면 물가방 하나 준비해서 자전거 타고 산을 향한다. 작고 왜소해도 달리기 하나는 자신이 있어 어느 해는 마라톤을 네 번이나 참여한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마라톤 마치고 오후에는 또 그날의 약속된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 탓에 마라톤도 최소 60세까지는 할 생각이고, 자전거도 처음 배우고 감포 등대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법 없이도 사는 남편 박종팔님 “내가 남자라고 한번씩 스스로 못이겨 신경질 부려 싸워도 저사람 돌아서서 5분을 못 넘겨요” 그런 아내가 고맙고 가엾단다. 지금은 집안에서 주로 생활 하지만 예전에는 미화센터에 가서 앉아도 있고 낚시도 하시고 교통장애자 사무실에 정기적인 후원도 하고 행사 때 가벼운 일도 거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비가 와서 오전에 일하지 않는 때는 함께 장애자 사무실을 방문한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 도와주며, 스스로 이만하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힘들게 12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파도 옆에서 서로 챙겨주며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절감한단다. 저처럼 이런 마음으로 산다면 이혼 하는 사람 하나도 없을 겁니더… 하하하 소원이 있다면 어른들 모시고 한집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 남편 박종팔님의 몸이 조금만 더 나아지면 작은 식당이라도 운영하며 살고 싶다며 밝은 웃음을 날린다. 내년 사월 벚꽃마라톤에서 만날 가볍고 경쾌한 모습의 김순옥님을 떠올려본다. 주어진 조건에 감사하며 내미는 손 잡아줄 수 있는 따뜻한 가슴 지닌 이웃이 있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과 같다니까요. 처음 페이스 놓치지 않고 주저앉지만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있으니까요” 전효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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