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혁 동
행정학 박사 부경대 교수
내 할머님께서는 불심이 돈독하셨다.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첫 손자를 보기 위해서 동지 불공으로 쌀을 천번 씻어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 할머님께서 예순이 되실 무렵 꼭 불국사에 가보고 싶다고 성화였다. 불국사에 가면 청운교 백운교가 있는데 한번을 타면 죽을 때 하루 만에 죽고, 두번을 타면 이틀 만에 죽는다고 하시면서 꼭 세번을 타야겠다고 하셨다. 그 시절에는 회갑 노인도 드물었으니까 아마도 죽음에 대한 준비 차 불국사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차멀미를 심하게 하셨으므로 사십리 길이 족히 되는 불국사까지 걸어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중학생이던 내가 동행을 했다.
불국사에 도착하여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 올라가니 덩그렇게 버티고 있는 대웅전 앞에 두 탑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교과서에 나오는 석가탑과 다보탑이었다.
그 후 나는 늘 다보탑을 봤기 때문에 누가 물으면 다보탑을 잘 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간은 문화재에 관심을 가질 무렵 다시 한번 불국사의 다보탑을 관람할 기회를 가졌다. 아, 그 때의 그 경이로움이란 참으로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다보탑에 관한 지식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아름다움은 균형과 조화와 통일과 파격이 어우러져서 이루어진다. 불국사의 다보탑은 남산 쪽인 앞으로 20M, 석가탑 쪽으로 20M 정도 비켜선 위치에서 바라보아야 제격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대웅전의 왼쪽 추녀와 토함산의 능선과 다보탑은 삼각의 구도가 된다. 이런 구도에서 다보탑은 토함산 능선의 순한 곡선과 대웅전 추녀의 날카로운 곡선 사이, 그 중간 쯤 되는 곡선의 미를 가진 균형과 조화를 절묘하게 함축하고 있는 건축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자연스럽게 펼쳐진 토함산과 대웅전을 경계로 한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곡선과 직선을 적당하게 갖춘 팔각의 다보탑을 보고 있으면 그 기막힌 조화와 균형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시 오른쪽으로 잠깐 눈을 돌려 석가탑을 보면 그 투박한 모습이 아기자기한 다보탑과 대비되어 다보탑의 독특한 파격적인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켜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다보탑 자체가 균형·조화·통일·파격의 미를 모두 고루 갖추고 있는 조형미가 뛰어난 탑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배경과 구도와 그 자체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다보탑을 보면 신라인들의 예술에 대한 감각은 물론 그 슬기로움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내 할머님께서는 불국사를 내려오시며 마치 큰 짐을 내려놓으신 것처럼 홀가분해 하셨다. 올 때보다 더욱 발걸음이 가볍다고 하시면서 나를 지긋이 웃으시며 바라보셨다. 어쩌면 생사를 초월한, 해탈한 불심의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닐까.
지금도 늘 나를 애지중지하며 아껴주시고 대견해 하시며 바라보시던 그날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오늘은 무척 고향 생각과 함께 할머님 생각이 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