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뜨겁다면 누구든지 할수 있다” 서악서원을 감싸고돌아 후미를 오르면 붉은 인동이 지천인 야트막한 돌담 뒤로 고풍스런 한옥 한 채를 만난다. 나무계단을 올라간 이층의 여닫이문을 당기면 황토로 된 나지막한 명상의 방과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넓은 작업실이 아늑하고 정돈되어 저절로 작품이 나올 듯하다. 사군자를 치며 시를 쓰는 김일호 시인(56)과 김광희 시인(52)의 공간이다. 치열한 생활인으로 살아오던 중 경주문예대학의 졸업작품집 ‘은행나무’에 필이 꽂힌 김광희 시인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경주문예대학 11기로, 남편 김일호 시인은 쉰을 넘긴 나이에 17기생으로 어릴 적 문학의 꿈을 되살린 분들이다. 김광희 시인은 전북일보 신춘문예(’06)에 ‘바람 들어 좋은 날’로 등단했고, 김일호 시인은 경남신문 신춘문예(’08)에 ‘대추나무’로 등단해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문학수업은 깊어졌고 가슴속 시의 종자들이 발아해 자라서 시인의 향기를 담은 작품으로 피어났다. 김광희 시인은 어릴 때 아버지가 들려주신 시조를 읊조리며 자랐다. 자연스레 책과 가까워졌고, 학교 도서관의 책을 모두 읽어버려 당시 은사이시던 김윤근 선생이 경주시립도서관의 책을 빌려주신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작가 박완서는 사십이 넘어서 등단을 했다”며 문학의 꿈을 갖도록 해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고, 가능성은 희박하고 열망만 많았던 생활속에서도 마음속 숙제처럼 그 꿈을 꼭꼭 간직했다고 한다. 문학수업을 받으면서 배운 ‘천편필사’의 방법을, 어림도 없다 생각하다가 6개월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 있어 한번 해보자 싶어 시작했다. 처음에는 번호를 붙여가며 쌓이는 재미로, 나중에는 시를 음미하는 재미로 1천3백여편을 필사한 노트가 차곡차곡 서재에 보물처럼 꽂혀있다. 2000년부터 시 공부를 시작하고 2년 뒤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해 2007년 2월 졸업하기까지 장사하고 살림하는 것을 합해 1인 4역을 한 김광희 시인은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자고 결심하니까 해지더라”며 웃는다. 가슴이 뜨겁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 김일호 시인은 결혼 전부터 여러 산문집을 탐독하며 문학의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문의 아침시단은 스크랩하며 읽었고 처음 망설일 때 ‘가슴 뜨겁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내었다. 부인의 문학수업을 외조하면서 강의실 밖에서 엿들은 문학의 향기에 취해버렸다. 그것은 영혼의 상승을 위한 도약이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달렸다. 그러다 49세에 사군자를 만났고 51세에 시를 만났다. 너무 늦지 않았나 염려도 된단다.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어린아이처럼 정신없이 흠뻑 빠져버리는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세월이 가면 아름다운 정취가 깊어질 시인의 집 김일호 시인은 터 넓은 마당에 마음껏 화초를 가꾸며 생활하는 꿈을 30년 이상 키워왔고 이제 그 첫발을 내디뎠다. 왕릉과 서원이 있는 시내 근교 서악에 마련한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으로 2년 전 이사 했다. 골목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시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 미완의 집에는 차나무가 겨울을 이겨내고 예쁜 꽃을 피웠고 한쪽 담장엔 능소화가 새순을 뻗고 있다. 맞은편 버려진 집터의 기와들은 시인의 집에서 작은 연못으로 새롭게 태어나 샛노란 어리연을 품었다. 곧 담쟁이 넝쿨이 온 담벼락을 뒤덮을 것이다. 마당 한 켠에는 고추, 상추, 호박 등 이웃과 함께 할 야채들이 익어가고 담장 넘보며 새싹을 나누고 참견하는 이웃 어르신의 배려가 정겹다. 아직은 햇살이 따갑다. 세월이 가면 그늘 짙어져 시원하고 아름다운 정취가 깊어지리라. 진솔하고 성실하면 어디서든 진심은 통한다.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만큼 부부에게 행복한 일 또 있을까. 경주의 문화행사에 늘 함께 하는 두 시인. 한 길을 걷는 부부의 뒷모습은 천상 닮음꼴이다. 전효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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