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많아 ‘돌촌(乭村)’, ‘석촌(石村)’
마을 뒷산 학처럼 생겨 ‘학전(鶴田)’
수은주가 36℃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무더위는 밤에도 수그러들지 않아 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고 너무 더워서 죽음에 이르는 사람까지도 있다.
경주 산내에서도 국토순례를 하던 여대생이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쩌면 지구촌 자연환경이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석촌은 양남면지역으로 동대봉산 준령이 동해를 향해 힘차게 뻗어 내리면서 만들어낸 깊은 계곡에 의지한 산골마을이다. 높은 산들과 깊은 계곡에 위치한 이 마을은 돌이 많아 ‘돌촌(乭村)’, ‘석촌(石村)’이라 불렀다. 양남면 기구리와 석읍리 사이에 자리한 이 마을은 동대봉산에 의지한 채 양남면 효동리와 외동읍 입실·모화리, 양남면 신대리 등에 둘러싸여 있다.
석촌은 ‘새밭두들(학전)’, ‘새마을(신촌)’, ‘명대’, ‘용바웃골’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경주에서 이 마을에 가려면 입실에서 양남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를 따라 동대봉산을 넘어 효동리와 석읍리를 지나면 이 마을에 이른다. 경주시청에서 32km, 40분 거리이다.
석촌은 총 80가구에 180명의 주민들이 주로 벼농사와 한우(250두), 고추, 콩 등 밭작물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이 마을 최고령자는 이수연(96 입천댁) 할머니로 허리가 다소 굽은 것을 빼고는 아주 건강하다. 아직도 밭에 나가 김매고, 감자를 캐는 등 농사일도 하고 출입도 자유롭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고, 주로 채식을 즐겨하고 음식은 적게 먹는다고 한다.
억새밭 둔덕 마을이라 ‘새밭두들’
새밭두들 석촌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억새밭이었던 둔덕에 마을이 들어서 ‘새밭두들’이라고 했다. 또 마을 뒷산이 학처럼 생겨서 ‘학전(鶴田)’이라고도 한다. 석촌의 중심마을로 마을회관이 이곳에 있다. (20가구)
새마을 새밭두들 남쪽에 있는 새로 들어선 마을이다. 1973년 9월 폭우로 인해 수해를 입은 석촌리와 가구리의 상습침수지역 주민들을 이듬해 10월 이곳으로 이주시켜 만든 마을이다. 마을이 새로 형성되었으므로 ‘새마을’ 혹은 ‘신촌(新村)’이라 부른다. 신안주씨들이 많다. (30가구)
명대(明袋)골 새밭두들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석읍리와 경계지점에 있다. 이 마을은 동쪽 산에 살던 초(楚 : 혹은 최)장군과 석읍 대현산에 살던 황(黃)장군이 서로 활로 싸웠으므로 ‘초전테’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 후 마을이 평온해졌고 해가 뜨면 밝은 양지가 되는 곳이라 하여 ‘명대(明袋)’, ‘명대(明垈)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김영김씨 집성촌이다. (18가구)
용바웃골 마을 뒷산에 마치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용바웃골’, ‘용암(龍岩)’, ‘용암리(龍岩里)’라고 한다. 석촌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도로가 있는 새밭두들에서 이 마을까지는 약 4km로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가파르고 험한 길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고개를 넘고 계곡 안 골짜기의 언덕빼기에 있는 용바웃골은 그 위치에 따라 ‘웃말’, ‘중간말’, ‘아릿말’ 등으로 다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15가구)
웃말 용바우 서쪽 위에 있는 마을로 용바웃골 중에서도 가장 위쪽에 있다.
중간말 웃말과 아릿말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다.
아릿말 용바웃골 어귀에 있는 마을로 가장 아래쪽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응하리(應下里, 鷹下里) 응봉 밑에 있는 마을로, 용바우 동쪽에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몇 집이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동제 이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보름날에 동제를 지낸다.
당나무 마을 입구에 있는 300년 된 느티나무로 면(面)나무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는 밑둥치에서부터 3가지가 자라나 아주 울창한 숲을 드리웠으나 최근 나무 윗부분의 가지들이 일부 말라가고 있었다.
산 모양이 매처럼 생겨 매모골
구고재(九皐齋) 김해김씨 문중의 재실로 40여년 전 학전마을에 지었다. 옛날 작은 묘재가 있던 곳에 세운 이 재실은 한옥 4칸으로 현판은 2년 전에 도둑맞고 없다.
두리봉만딩이 지형이 두리벙벙하게 생긴 산으로, 흠치밭골 동쪽에 있다. 용암 중말 뒷산이다.
매모골 산 모양이 매처럼 생겨 매봉재라고도 하는데, 석촌리와 기구리에 걸쳐 있다.
돈테 학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학전마을 뒷산의 산 정상부를 주민들은 ‘돈테’라고 부르는데 그 연유는 모른다.
개캣딩이 지형이 마치 개의 콧등처럼 생긴 등성이로, 용바우 서쪽에 있다.
활기등 새밭두들에서 명대로 넘어가는 고개등성이로 ‘갓안등’이라고도 한다.
구비기재 새밭두들에서 용바웃골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가파른 이 고개를 넘어야 용바웃골에 이른다.
한밭장재 새마을 뒷골인 한밭골에서 효동리로 넘어가는 긴 고개이다.
행잣골재 용바웃골 웃말 뒤쪽에 있는 행잣골에서 외동면 모화리의 원원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범에게 물려간 사람 머리만 남아
갓얍 말림갓의 옆이라 하여 ‘갓얍’이라고 부르는 골짜기로 꾀밭미기 북쪽에 있다.
곧은골 두리봉 산 동쪽기슭으로 새마을 안쪽 골짜기이다. 골짜기가 쪽 곧다고 한다.
꾀밭미기 점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모르밭미기 모래밭이 있었던 골짜기로 용바웃골 복판에 있다.
반통골 이밭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용바우골의 남서쪽에 있다.
배나무골 반통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큰 배나무가 있었다.
산밭골 용바우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옻밭구미 옻나무가 많았던 구미진(후미진)골짜기로, 용바우 북쪽에 있다.
이밭골 용바우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큰범자리 석촌 뒷골짜기로 옛날에 범이 한밭골에 사는 한 여자를 잡아갔는데 마을사람들이 풍물을 치면서 찾아가니 이곳에 사람 머리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초장군과 황장군 싸워 피 흘러
피밭골 명대골의 초장군 무덤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로 초장군 황장군이 싸워서 피가 났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이 마을은 동쪽 산에 살던 초장군과 석읍 대현산에 살던 황(黃)장군이 서로 활로 싸워서 피가 산에서 흘러내려 이 골짜기로 흘렀으므로 ‘피밭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당나라 이여송이 산의 혈을 잘라 피가 났다고도 한다.
핫바지골 용바웃골 웃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한밭골 옻밭구미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1정보(3천평)가 넘는 큰 밭이 있었다고 한다. 새밭두들 서북쪽이다.
행잣골 용바우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
홈치밭골 옻밭구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용암 상말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고무대골 두리봉 아래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학전 서북쪽에 있다.
도딩계골못 본래 있던 못이 1972년에 큰비에 터지고 새로 막았다. 새밭두들 서북쪽 고무대골에 있는 못으로 ‘조덕지’라고도 한다.
초산테들 옛날 초장군(또는 최장군)이 이곳에 살면서 만들었다고 하는 들이다. 석읍 대현에 사는 황장군과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들로, 명대골에 있다.
돌마이들 새밭두들 동북쪽에 있다. 돌이 많은 들이다.
집넘들 새밭두들 동북쪽에 있다. 돌마이들 위쪽에 있다.
용머리 부순 상주 죽어
용바우 마치 용처럼 생긴 바위로, 용바웃골 동쪽에 있다. ‘용암(龍岩)’이라고도 한다. 이 바위는 현재 시멘트로 용머리를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외동에 사는 어떤 사람이 이곳에 묘를 썼는데 지관이 저 바위가 거슬린다고 하자 상주가 용머리를 파손했는데 바위에서 피가 나면서 상주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멘트로 용머리를 복원해 두었다고 한다.
초장군무덤 피밭골 등성이에 있는 초(楚)장군의 무덤이다. 지금은 묵묘가 되어 있다.
유목정(柳木亭) 명대마을 입구에 땅버드나무가 서 있는 곳에 ‘유목정’이라고 하는 주막이 있었는데 이곳이 옛날에는 동해에서 입실로 넘어가는 주요 길목이었으므로 아주 유명한 주막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수백년 된 땅버드나무가 늙어서 기력이 떨어진 채 힘없이 서 있다.
과속방지턱과 점멸등 설치
깊은 산골에 자리한 이 마을은 산세가 빼어나고, 물과 공기가 맑고, 인심이 좋아 범죄 없는 마을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러하다보니 비록 산골이지만 울산 등지에서 이곳으로 살려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마을 주민들은 새밭두들의 도딩계골에서 내려오는 도랑의 남쪽(경로당쪽) 제방이 낮아서 범람 우려가 있다. 제방을 튼튼하게 다시 막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또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양남-입실 간 지방도로에 교통량이 늘어나고 경사진 길에 과속으로 달리는 차들이 많아 대단히 위험하다. 따라서 마을 앞에 과속방지턱과 점멸등을 설치하여 교통사고를 미리 예방했으면 한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주종윤(64 대구 동산병원 과장), 이동한(62 전 세계일보 사장) 등이 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을취재에 협조해주신 김상길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김거름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