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적봉-도솔봉-삼형제봉-1,286봉-죽령 묘적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 오름길을 올라가는데 추월해간 소청 산악회원들이 도솔봉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이며, 도솔봉의 근사한 암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10시 25분 도솔봉 암벽지대를 로프에 의지하여 올라서고 헬기장에 도착하니 검은 화강암 표지석에는 도솔봉 1천314m를 알리고, 10시 55분 바로 옆에 있는 도솔봉 정상에 올라선다. 무질서하게 쌓아올린 돌탑과 바닥에는 이정표가 그려진 동판이 있으며,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의 도계를 이루는 산으로 정상 남쪽과 서쪽은 낭떠러지이며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정상에는 소청 산악회원 네 분이 곡차를 마시다가 홍일점이신 정여사라는 분이 먼저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2차 종주를 하고 있는데 1차 때는 뛰어다닐 정도로 앞만 보고 빨리 다녔지만 지금은 산천을 두루 구경하면서 즐기는 산행을 한단다. 그리고 우리가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는 대단하다고 하신다. 죽령고개와 휴게소 그리고 맞은편에는 천문대와 연화봉 등 소백산 연봉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우측으로 풍기읍이 내려다보인다. 정상 부근에는 낙엽이 떨어진 나목들이, 7부 능선 밑으로는 오색찬란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동지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며 쓸쓸함을 달래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조망은 일망무제로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온 능선들이 저 멀리서부터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는 백두대간의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다음 구간인 죽령에서 연화봉까지 올라갈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자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흘러가고 마음은 행복감으로 넘쳐흐른다. 아! 우리의 산줄기 백두대간이여... 험한 바위의 경사지대를 내려서는데 단풍산행을 오신 대구 산꾼들을 만나니 반가움이 넘쳐 흐르고, 삼형제봉을 올라가니 대구에서 오신 세 분이 휴식을 취하다 자리를 비켜준다. 다시 1,286봉을 향하니 암벽지대가 나오고, 바위사이의 밧줄을 잡고 올라서니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여기도 전망이 무척 좋아 피곤한 다리를 잠시 쉬게 한다. 또 하나의 봉우리를 넘고 1,286봉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하니, 정상을 좌측에 두고 대간길은 8부 능선에서 죽령을 향해 내려간다. 대간에서 벗어난 1,286봉에 산죽을 헤치고 올라서니 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도솔봉까지 암릉으로 이어진 능선의 장쾌함을 감상할 수 있다. 죽령까지는 내리막길로 산죽지대가 이어지고 두 번의 헬기장을 지나면 산에서 운명을 달리한 악우를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있으며, 우측 샘터에서 몇 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작은 봉우리를 돌아나가면 커다란 무덤이 나오고 13시 53분 드디어 죽령에 도착한다. 대형 표지석이 있고 바로 옆에 죽령 주막이 있는데 임종진 회원 부부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이 고개는 높이가 689m로, 중앙선 철도 죽령역에서 희방사역 사이 4,5km의 똬리굴이 산허리를 지나고, 중앙고속도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4,6km의 죽령터널이 통과한다. 죽령에 대한 유래는 ‘삼국유사’ 죽지랑 편을 보면,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에 신라사람 죽죽이 길을 개설하였으며, 죽죽은 이 고갯길을 닦은 후 지쳐서 죽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침 도솔봉 정상에서 만났던 정여사라는 분이 밥과 술을 권하고, 우리는 체면 불구하고 대추술만 몇 잔 얻어 마신다. 또 한 구간을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과 산꾼들의 넉넉한 인심을 가슴 가득 안고, 차는 죽령을 출발한다. 40여분 후부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낙동강 휴게소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은 후 경주에 도착하니 19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 함께 한 젊은 청년(?) 이의부 감사님은, 그 후 산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산행 중 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도 기브스를 한 상태에서 정맥길을 누비시어 올 연말이면 1대간 9정맥을 완주할 예정이다. “완주하는 그날까지 즐겁고 안전한 산행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결혼 5주년 기념일인데도 불구하고 운전해 주신 임종진 회원 부부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합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