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와 코스닥이 거침없이 추락하며 ‘9월 금융위기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코스피는 1년6개월 만에 장중 1400선이 무너지고, 코스닥은 44개월 만에 410선대 추락이다. 원·달러 환율도 하루만에 20원 가까이 폭등하면서 3년10개월 만에 1130원대로 마감했다.
9월 첫날부터 서울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진데 이어 이틀연속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국내·외 모두 좋은 소식은 없고 악재만 쌓여간다. 자본수지 적자 규모는 환란 이후 가장 많은 수치를, 여기에 8월 무역수지 마저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적자를 내자 외환과 주식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함을 감지한 정부도 팔을 걷어 부치고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위기설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위기설의 실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외국인 6~7월 순매도…자본수지 적자 57억7000만 달러
‘9월 금융위기설’은 9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외국인 보유 채권 규모가 6조 원이나 된다는 사실에서 시작됐다. 외국인이 채권을 모두 팔아 달러로 회수할 경우 시중금리 상승, 원·달러 환율 급등, 외환보유액 급감 등으로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는 가정이다.
위기설이 사그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외국인이 지난 6~7월에 보유 채권을 집중 매도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지난해 국내에서 채권을 365억 달러를 순매입했고 올 들어서도 5월까지 162억 달러를 순매입했으나 6월부터 돌연 순매도로 돌아섰다.
외국인들의 채권 매도는 해외 투자은행(IB)들의 2분기 실적 부진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공공 모기지기관인 페니매(Fannie Mac)와 프레디맥(Freddie Mac)의 부실 우려가 확산되며 유동성 확보가 절실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이 올 들어 주식에 이어 채권마저 순매도하자 7월 자본수지 적자 규모는 57억7000만 달러로 늘어났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2월 63억7000만 달러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경상수지마저 올 들어 7월까지 78억 달러 누적 적자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자본수지마저 대규모 적자를 보여 대외균형을 맞추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여기에 대외채무가 급속도로 늘면서 외환위기설을 부추겼다.
정부가 물가 불안 해소를 목적으로 원·달러 환율을 낮추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대규모로 방출하고 나선 것도 위기설을 키우는데 한몫 했다. 정부는 지난 7월에만 환율 방어에 100억 달러 이상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언론, 9월 위기설 앞 다퉈 쏟아내
‘9월 금융위기설’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력한 진화에도, 해외 언론들은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일 인터넷판에서 리먼브러더스의 권영선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인플레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한 한국 정부가 여러 거시정책을 구사하더라도 경제가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경제가 지난 1992년 이후 21분기 연속 확장돼왔다”면서 그러나 “내수가 견고한 수출세를 깎아먹으면서 올해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한국 경제의 향후와 관련해 이달로 만기가 돌아온 70억 달러의 외국인 보유 채권이 어떻게 될지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그 규모가 2470억 달러로 추정되는 한국 보유 외환의 3% 미만이기에 미미하기는 하나 워낙 민감한 시점인 만큼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방아쇠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또 한국이 갖고 있는 단기외채가 2222억 달러가량으로 높은 수준이라면서, 설상가상으로 이 가운데 40%가량을 한국에 진출한 외국 은행들이 갖고 있다는 점도 불안감을 높이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영국의 일간지 더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한국이 검은 9월로 향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패니매와 프레디맥, 다른 미국의 공사채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투자로 약 500억 달러에 이르는 유동성 잠재 위기가 생겼다”고 지적하고 “이달에 만기가 도래하는 67억 달러 외채 중 상당액이 바로 해외로 빠져나간다면 원화 가치 하락 압박은 더욱 가중돼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한목소리, “큰 의미 없고 증폭된 것(?)”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설은 과장됐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목소리다. 우선 외국인이 8월 들어 채권을 다시 순매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근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1일에서 25일까지 외국인은 국내에서 6억9000만 달러의 채권을 순매수했다. 9월 중 만기 도래하는 채권의 규모도 축소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5월말 조사할 때 84억 달러였지만 지난달 20일에는 67억 달러로 줄었다. 만기 도래한 채권 중 17억 달러가 재투자된 셈이다.
외채 증가도 조선업 등 수출업 호조로 확보된 달러 선물환을 은행들이 매입하기 위해 현물 달러를 팔아 해외 단기 차입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또 외국은행 지점들이 국내 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본점으로부터 단기 차입을 늘린 것도 외채 증가의 이유로 꼽힌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9월 첫날부터 금융시장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9월 위기설’에 대해서는 “큰 의미가 없고 증폭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총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책포럼에 참석해 “9월 위기설은 우연히 국고채 만기가 통합발행으로 일치돼 주목받은 것일 뿐”이라며 “외화유동성의 경우 한국만 특별히 문제가 있으면 큰일이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어려워서 우리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1차관 역시 경제·금융상황점검회를 통해 “정부는 외환시장의 과도한 급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심리적 쏠림현상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면서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말라”고 말했다.
이어 “9월 위기설은 근거 없는 과장된 것으로, 문제없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