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놀러간 적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항상 마지막에 들렀던 ‘귀신의 집’. 신나게 놀이기구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쯤이면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귀신의 집 또는 유령의 집을 찾았다. 친구들과 입구에 도착해서도 들어갈 지 말 지 열 번도 넘게 망설였다. 결국 우리는 귀신의 집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표를 사는 순간부터 우리는 무서움 반, 기대 반으로 설렜다. 친구들과 서로서로 손을 꼭 잡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그렇듯 소복을 입은 마네킹이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 우리도 덩달아 비명을 지르며 귀신의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서로의 얼굴 을 쳐다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던 학창 시절의 추억.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귀신의 집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남자가 법당으로 찾아왔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건장한 체격의 K는 강원도에서 건축업을 하는 분이었다. “들어오세요.” 나는 법당으로 그를 안내했다. 앉자마자 K는 서둘러 이야기를 꺼냈다. “20년이 되도록 건축 일을 했습니다. 그동안 많을 일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K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저는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열일곱명 정도는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현지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우리처럼 지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집에 자주 가지 못합니다. 현장 근처에 임시 숙소를 만들고 그곳에서 생활합니다. 다리 공사를 하기 위해 강원도로 온 뒤부터 생긴 일입니다. 현장에 도착한 첫 날 우리는 모두 숙소로 들어가 자신이 기거할 방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숙소에는 모두 열 두 개의 방이 있었고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서로 편한 사람끼리 방을 같이 쓰기로 했습니다. 그날 저녁 내일부터 시작될 공사의 성공을 기원하며 모두 술을 한 잔씩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4호방에서 잠을 잤던 베트남 근로자가 짐을 싸서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도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이유인지 잘모르는 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른 동료가 그 방에서 잠을 잤고 그 동료는 다음날 저에게 찾아와 지난 밤 일을 얘기해줬습니다. 4호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여자가 천장에 매달려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 친구가 일이 피곤해서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그 방에서 자고 나온 다른 동료들도 모두 똑같은 귀신을 봤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 후로 아무도 그 방에서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 귀신이 복도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동료들은 밤만 되면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무서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사도 계속 늦어지고 있습니다. 문제가 생각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K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나는 K와 굿을 하기로 했다. 3 일후 차 한가득 제물을 싣고 강원도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한 뒤 우리는 서둘러 굿을 준비했다. 굿은 밤 늦게까지 계속됐고 결국 그 곳에서 남자에게 버림받고 억울하게 죽은 처녀귀신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마음이 돼 그 영혼의 한을 달랬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귀신은 한을 풀고 저승으로 돌아갔다. 벌써 그 일이 있은 지 한달이 지났다. 굿을 한 다음부터는 아직까지 귀신을 다시 봤다는 사람은 없다. 나는 오늘도 법당에 향을 피우고 무사히 공사를 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편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한다. 김종한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