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에 머물며 ‘촛불시위’에 대해서조차 발언을 삼가할 만큼 활동을 자제해오던 노무현 전대통령이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노 전대통령 스스로가 기획하고 개발했다는 정치토론을 위한 웹사이트 ‘민주주의 2.0’(www.democracy2.kr)을 오늘(18일) 연 것이다. 노 전대통령은 내달 1일에는 모처럼 상경하여 ‘10∙4 남북정상선언’ 1주년 기념특강을 할 예정이다. 한편, 그의 전직 참모들, 두뇌들은 이런저런 연구소를 개설했다. 그래서 노 전대통령이 온∙오프에서 공히 정치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노 전 대통령측은 ‘민주주의 2.0’ 개설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사회적 조언 내지는 봉사’를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그런가? 측근들 이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정치토론 사이트를 전직대통령이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활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조언과 봉사활동의 하나로 하필이면 정치토론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것을 수긍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베타판’으로 문을 연, 노 전대통령의 이 사이트는 슬로건이 “깨어있는 시민이 시민주권시대를 엽니다”이다. ‘자유로운 대화, 깊이 있는 대화를 기대하며’라는 제목으로 노 전대통령은 ‘자유마당’이라는 메뉴에 실제로는 사이트오픈 취지문에 해당하는 1300자 길이의 글을 오전 11시 50분경 실었다. 게재 6시간쯤이 지난 오후 6시 이 글을 읽은 사람의 수는 3만8000여명에 이른다. 글의 내용은 요약하면 이렇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런 대화를 위한 시민공간으로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 사이트의 동력은 시민이다. 나를 포함한 사이트의 운영진은 토론을 주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운영책임만을 진다.” 노 전대통령을 비롯한 사이트의 운영진은 운영책임만을 질뿐, 토론을 주도하지 않을 것이란다. 그러니 노 전대통령이 사이트를 통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한 것이겠다. 그러나 ‘친노세력’들이 결집하여 의제를 정하고 생각을 교환하면서 공감하면 사이트는 친노세력의 정치토론 마당, 나아가 진보적인 온라인 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노 전대통령은 이 사이트 개설의 보이지 않는 목적일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으나 움직이는 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직대통령이지만 이명박 현대통령보다도 젊은 데다, 토론 좋아하고, 정책 하나 만들 때도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던 노 전대통령이 정치활동을 재개하려고 하는 일은 사실은 ‘노무현다워 보인다.’ 우리나라나 그 어느 나라의 그 어느 전직대통령도 퇴임 후 정치활동을 한 사례가 드물다고 하여 노 전대통령의 정치활동 재개를 무조건 흘겨볼 일도 아니다. 사례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관례도 깨지는 것이니까. 재임 중 사안 하나하나에 철학을 제시하던 노 전대통령의 정치스타일에 염증 내던 많은 이들이 현 정부의 철학 부재를 개탄한다. "과거는 지금보다 좋았다"는 감상을 섞어 많은 이들이 노 전대통령을 재평가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니 노 전대통령은 정치활동 재개 시기는 잘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 여파로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 예상되는 뒤숭숭한 지금, 노 전대통령의 정치활동 재개로 소모적인 정치 입씨름이 재연될까, 조마조마하다. 노 전대통령은 지난 5년간 이래도 `노무현 탓`, `저래도 노무현 탓`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정치 입씨름이 얼마나 소모적이었던가를 기억해야 한다. 현 정부에 극단적으로 실망한 사람들의 입에서 현 정부의 산파는 바로 노 전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지적을 음미해야 한다. 그렇게 반성하고 기억하며 조심해서 정치활동을 재개해야, 국민의 마음은 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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