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 핸들 있다고 다 외국차냐?” 1980년대 중반 일본 최고의 유력 일간지 1면 특집기사에 실렸던 글이다. 마침 현대차의 포니가 일본 시장을 노크하던 때였다. 그때 우리나라는 86 아시안게임에 이어 88올림픽을 앞두고 있었다. 86년에는 건국 이래 초유의 무역흑자 46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민주화의 자신감도 무르익어가던 시대였다.
현대차는 20년이 지난 2006년 사업기(2006.4~2007.3)에 일본에서 1484대를 팔았고, 2007년 사업기에는 943대를 팔았다.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0.42%다. 판매가 저조하다 보니 철수설도 흘러 나왔다. 20년 전의 일본인들이 지금이라고 달라질 게 없으니 현대차의 판매도 크게 늘어 날 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기술과 가격으로 극복 못하는 심리적인 저항선이 일본 수입차 시장에 존재할지 모른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그 10배도 넘는 자동차를 퍼붓고 있다. 지난해 5만3390대가 팔린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는 1만7600대로 33.0%를 차지했다. 올해는 점유율이 40%대로 높아지고 있다. 역사 왜곡 등 일만 터지면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행동은 따로 노는 국민성 탓이다. 어디 자동차뿐이랴. 디지털 카메라도 캠코더도 다 그렇다.
얼마 전 일본차 ‘ㄹ’을 7월 중에 사면 최대 650만원을 할인해준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그 웹 기사 뒤에 댓 글이 꼬리 물었다. “지금 그런 기사를 쓸 때냐”로부터 "일본차를 사는 정신상태는 뭐냐”는 의견까지 비판 일색이었다. 일본으로부터 생산설비는 구매가 불가피하지만 소비재는 아예 사지말자는 의견도 있었다.
요즘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을 둘러보면 유독 일본차가 많이도 늘었다. 슬픈 것은 일본차를 사지 말자는 애국적 호소가 별로 구매력이 없을 것 같은 네티즌에게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사실 일본제가 아니더라도 독일제건 프랑스제건 미국제건 외제 자동차는 되도록이면 안 사는 것이 우리나라 산업을 살리는 길이다. “국제국가 시대에 웬 편협이냐”고 비판해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죽을 판에 무슨 국제화 잠꼬대인가. 지금 우리나라에선 청년이건 노년이건 실업자들이 거리에, 산에 넘쳐난다. 대학졸업자가 1년이면 30만 명이 넘게 사회로 나올 텐데 금년 취업자는 기껏 2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실업률은 국부가 유출되는 대일무역적자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일무역 적자는 10년간 2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 상반기에 171억 달러를 기록해 올해엔 300억 달러를 깰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속된 말로 “죽 쑤어서 개 좋은 일 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역적자는 석유값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이유는 국교정상화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된 대일 경제예속 구조 때문이다.
독도 뒤에는 우리의 약소한 처지가 드러난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한일관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미래를 향해 명분을 축적하여 자신들의 국익을 챙기면서 동시에 역사적 상흔을 안고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는 “너희들은 우리들의 식민지였다”는 사실도 주입시킨다.
정치인들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고성만 지를 게 아니다. 그들은 일본을 뻔질나게 방문할 때마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이미 30년도 전에 자민당 보스이던 타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처럼 단돈 50억원을 먹어도 전직 총리가 구속되는 부패 엄단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은 작년 9월 수십년을 준비해온 달 탐사선을 발사했고 우리가 아리랑3호 다목적 위성 발사할 때 발사체에 입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휴대폰 자동차 등 많은 수출품의 첨단기술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뭘 했나. 이명박 정부를 ‘토목경제정부’라고 질타한 노무현 정권은 바로 그들 자신이 5년간 토지보상금으로 1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풀면서 토목경제를 부양하고 부동산 값 폭등을 유발했다. 부동산을 억누른다면서 부동산에 의한 새 부자들을 양산했다. 아파트 분양가 폭등을 방치하여 건설사의 이익을 극대화해주고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을 앗아갔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중산층에게 종부세 폭탄을 때렸다.
100조원이면 새 땅을 불도저로 밀 필요 없이 지금도 남아도는 땅에 엄청난 부가가치를 유발하는 최신 공장과 연구소를 수십 개, 아니 수백 개 세웠을 것이다.
독도를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의 업그레이드가 긴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국 강병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의 미래를 기획할 비전이 결핍된 패거리들의 집권은 나라를 제자리에서 맴돌게 한다.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넋 빠진 국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