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와 재치를 갖추었지만, 금기와 사려는 없는 도발적 막 말 언변으로 국민을 수시로 놀라게 했던 노무현 전대통령 시대를 ‘잃어버린 5년’이라고 규정하는 의견에 나는 동조한다. 왜인가?
노 전대통령의 업적이 없거나 작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는 점에서만도 노 전대통령은 업적이 없다 할 수 없다. 또, 후대의 엄정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지만 권위주의의 잔재를 없앤 점, 경제분야에서 해마다 성장률 평균 4.3%를 이루고 2007년에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는 점, 사회투자에 힘쓰고 사회복지에 노력한 점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업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 시대는 불안하고 시끄러웠다. 집권 5년 내내 막 말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역사 정리 같은 문제도 있었지만 외교와 안보, 통일을 두고 벌어진 이념적인 문제가 늘 넘쳐났다. 도발적인 막 말 언변의 대통령 한 말씀이 그때마다 소란을 보탰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새 정부 인사들이 참여정부를“일은 하지 않고 논리 세우고 토론하느라 말만 많았던 정부”라고 한 혹평에 고개를 끄덕였다.
논쟁이 끊이지 않자 생긴 문제는 국민들 사이에서까지 편 가르기가 굳어졌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야 여당과 야당,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선거철도 아닌 평상시에 국민들 사이에서도 정치적인 견해를 두고 편 가르기가 심해져 동창모임, 친구모임에서조차 정치적인 견해를 숨기게 된 것은 우리 국민의 불행이다. 노 전대통령은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과 경제성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더 심해진 빈부 차이에 의한 양극화, 정규직과 늘어난 비 정규직 사이의 양극화, 견해 차이에 의한 양극화가 참여정부 시기에 만들어졌다. 그러니 그 시대는 ‘잃어버린 5년’이다. 양극화는 국민의 건강한 에너지를 잠식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견해 차이에 의한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언론인들 사이에 우스개 반으로 떠돌던 말이 있다. 기자들도 양극화에 편승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이다. “박형, 글 쓸 때 중도파가 되지 마. 극우 아니면 극좌의 의견에 서. 그러면 편이 생기고 박형 부르는 모임이 나타나. 가운데 서면 편이 안 생겨. 조갑제 씨를 봐” 라고 농담 같은 충고를 한 신문사 동기생이 있을 정도다.
촛불집회를 두고 견해 차이에 의한 양극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나는 이런 의견, 너는 저런 의견이군” 식으로 견해 차이를 확인하고 다른 견해를 들어보려는 소통의 자세는 전혀 없다. 극우 아니면 극좌의 편에 선 싸움꾼들이 전면에 나서고 많은 네티즌들이 편을 드는 형국이다.
다른 이들은 누구를 꼽을지 모르겠지만 촛불집회를 두고 현재 전면에 나선 대표적인 싸움꾼으로 극우 쪽에서는 소설가 이문열, 극좌 쪽에서는 저자이며 대학강단에 서는 진중권을 꼽겠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언어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아, 처음 들으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과격하거나 야유적이거나 비틀린 표현을 막힘 없이 무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진보적 견해를 가진 네티즌들의 공격을 뻔히 예상했을 소설가 이문열이 촛불집회를 ‘촛불장난’으로 비하하고 “보수층들이 의병이라도 일으켜야 한다”고 나서자, 저자 진중권이 “노인들이 벽에 ×칠 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의견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고 적나라하게 응수한 어제, 오늘의 상황을 보면 이 싸움꾼들에게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촛불집회를 두고 우리 시대의 싸움꾼들이 벌이는 말 전쟁은 아마 갈수록 더 전투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 시대를 돌아보면 보이듯, 말 전쟁으로 빚어지는 정치적 견해의 극단적 양극화는 싸움꾼들에게는 몰라도, 국민들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토론문화 성숙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견해를 돌아볼 시간조차 차단해 버릴 것이다. 박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