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최진실의 충격적인 자살이 뉴욕 한인사회에 전해진 지 이틀만인 지난 2일 뉴욕에서도 자살 소식 하나가 뉴요커들을 우울하게 했다.
전기총격총 발사로 인한 사망사건으로 징계조치를 받은 마이클 피곳 경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곳 경사는 지난달 24일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 건물 비상계단에서 나체 차림으로 소동을 벌이던 남성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이 남성은 건물 외벽 비상계단에서 형광등을 들고 소동을 벌였는데 경찰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 전기 충격 총을 발사했다. 불운하게도 이 남성은 약 3m 아래의 지상으로 추락,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옮겼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전기총 발사명령을 내린 피곳 경사는 징계조치를 받고 경찰 배지와 총기를 압수당했다. 뉴욕시 경찰의 전기충격총 사용지침에 따르면 추락의 위험이 있는 용의자의 경우 에어백이 도착하기전에는 총을 발사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아마도 피곳 경사는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겠지만 규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었다.
피곳 경사는 징계가 너무도 불명예스러웠던 모양이다. 동료의 라커룸을 부수고 총을 꺼내 자살하면서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이번 사건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유서를 남겼다.
경솔한 판단으로 한 생명이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로 인해 자살까지 하고 만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공교롭게 최진씰의 자살 사건에 이어 전해진 뉴욕경찰관의 자살로 인해 한인사회는 가슴이 스산해졌다.
과거 60년대 한강 다리에는 "잠깐만 참으세요"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한강다리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를 만류하는 내용이었다.
길이가 5km에 이르는 뉴욕 북부의 타판지 다리는 허드슨강 폭이 가장 넓은 곳에 세워져 있다. 다리 자체는 멋이 없지만 주변 풍광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다.
인도가 없기 때문에 보행자는 볼 수 없음에도 차를 세우고 투신하는 일이 이따금 있는 모양이다. 다리 중간에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Life Is Worth Living)는 의미심장한 내용의 작은 표지판이 양 방향으로 달려 있다.
어느 전문가들은 자살하는 이들이 기실 누구보다 생의 욕구가 강하다고 말한다.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에 그것이 꺾이는 순간 좌절의 강도와 포기의 속도 또한 빠르다는 것이다.
또한 자살 기도자는 통상 자살자의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순간의 선택으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최진실씨의 자살에 대해 수많은 언론이 허다한 말들을 늘어놓았기에 덩달아 변죽을 울릴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가지는 말하고 싶다.
추측성 작문과 선정주의적 보도는 한 사람의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뿐 아니라 충동성이 강한 10대나 세상의 불행을 홀로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오도된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다.
남북경협에 공이 큰 현대 정몽헌 회장이 2003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직후 한 80대 실향민이 “이제 고향 가긴 다 틀렸다”면서 자살한 일이 있다. 비극적인 센세이셔널리즘을 지나치게 부각한 당시 언론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살은 결단코 잘못된 선택이다. 자살하는 모두를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외없이 신호가 있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거나 평소보다 말수가 적거나, 우울하던 사람이 별 이유없이 표정이 밝아지는 것도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다. 기왕이면 언론도 자살에 대한 과잉보도를 할 시간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삶의 의욕을 일으킬 수 있도록 건강하고 감동적인 소재들을 발굴하면 얼마나 좋을까.
자살문제가 사회의 의제로 떠오를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70년대 어느 주간지에 실렸던 독자투고 ‘낙서(落書)’이다. 자살이라는 암울한 색채의 낱말에서 용솟음치는 생의 의지를 찾을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했다. 침울한 표정으로 종이위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자살이라는 단어를 이어 쓰던 그의 입가에 어느 순간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는 힘차게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다. 종이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
노창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