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공직자들이 쌀 소득보전 직불금을 부정으로 받은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쌀농사 짓는 농부들에게 일정액의 소득을 보존해 주려고 만든 쌀 소득보전 직불금을 농부 아닌 사람들이 받아 챙겼다면 충격중에 충격이다. 더구나 감사원 조사 결과를 보니, 업무능력과 더불어 도덕심을 무기로 일해야 할 공무원들 중 무려 4만 명이, 그리고 공무원과 비슷한 자세로 일해야 할 공기업종사자 중 6000명이 본인이나 가족의 이름으로 직불금을 챙겼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랄까, 부정과 부패에 대해 한탄한 것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한 두 번도 아니다. 군사정부 시절은 물론이고, 민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 시절을 통틀어 “공무원에게 청탁이나 금품이 필요 없다”고 확신하며 발언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오죽하면 ‘청렴사회’가 공무원 사회의 캠페인 구호가 되고 ‘투명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으로 떠오르며 부패방지법에 따라 공무원행동강령이 제정되었을 것인가?
범죄에도 질이 있다. 그와 비슷하게 나쁜 짓에도 등급이 있다. 추수가 끝난 가을과 초겨울이면, 담장 없는 시골집의 마루에 쌓아놓은 벼 가마니며 검은깨 자루를 도둑 맞고 울부짖는 농부들 뉴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종종 보도되곤 했다. 추수 해놓은 곡식을 훔쳐가는 도둑들이야말로 죄질이 나쁜 도둑들이다. 온 몸으로, 마음으로 일년간 한 톨씩 공들여 농사한 곡식을 잃은 농부들의 상실감을 나는 감히 짐작도 못 하겠다.
2005년부터 시행하여 온 쌀 소득보전 직불금 제도는 시행에 허점이 꽤 있었던 듯하다. 농사를 지은 농부들에게 소득을 보전해주기 위한 제도이니, 진짜 경작자들에게만 직불금이 돌아가도록 했어야 했다. 직불금을 신청할 때 비료구입 확인서니 수확한 벼의 농협수매 실적이니를 제출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했던 것 같다.
‘쌀 직불금’이 이번에 뉴스가 되도록 만든 인물인 이봉화 보건복지부차관 경우를 보면 단순히 쌀 직불금 신청서와 포기서만 제출하면 될 정도로 신청절차며, 적합성 검토절차가 허술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농지 면적을 실제보다 부풀려 신청하거나, 공장용지를 농지로 허위 신청해 타거나, 같은 농지를 두고 여러 사람이 중복 신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청절차와 적합성 검토절차가 허술했었다면 보완하면 될 일이지, 그저 세금이 줄줄 샜다고 분개하고 한탄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서 농부들의 쌀 직불금을 챙긴 농지 소유주들, 특히 공무원들의 나쁜 짓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볼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공무원을 포함하여 쌀 직불금을 챙긴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한 행동이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총 17만 명의 다른 공무원, 공기업종사자, 의사와 변호사와 기업체 임직원 같은 전문직들도 그렇게 했는데, 뭐”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쌀 직불금을 받은 전문직 17만 명, 직업이 밝혀지지 않은 11만 명은 분명히 약자를 밟고 그저 ‘돈’만을 위해 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것이라는 진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다행히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홍준표의원 같은 일부 정치인들은 ‘쌀 직불금’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부적격자의 경우에는 직불금 환수와 동시에 엄격한 징계절차를 내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처리도 할 수 있도록 앞장 서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는 ‘나쁜 짓’에 대한 진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사회는 “뭘 그 정도 가지고……” 하는 잣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는데, 뭘” 하는 잣대로 쌀 직불금 불법 수령자들을 봐 주어서는 안 된다. 이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지역에도 없다고 누가 장담 하겠는가 악의 평범성과 먼 친척인 ‘나쁜 짓의 평범성’이 사회에 번지도록 내버려 두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