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꼭 47년 전인 1951년 4월 11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더글라스 맥아서 원수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었다. 그의 해임은 자체로 중요했을 뿐더러 미국의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맥아서가 해임된 까닭은 그가 6.25 전쟁을‘제한전(limited war)’으로 치르려는 트루먼의 정책에 드러내놓고 반대한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으로 침입했던 북한군이 국제연합군에 의해 궤멸되었을 때, 갑자기 중공군이 한반도로 침입해서, 국제연합군은 전반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원자탄을 사용하면 공산주의 중국을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트루먼과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트루먼 정권은 두 가지 이유로 중국에 대한 전면전을 꺼렸다. 먼저, 미국의 우방들이 중국에 대한 원자탄 공격에 반대했다. 다음엔, 트루먼 정권은 중국에 대한 원자탄 공격이 소련의 서 유럽에 대한 보복을 부를까 걱정했다. 당시 미국은 소련보다 17배나 많은 원자탄들을 보유했지만, 트루먼 정권은 ‘3차 대전’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일들은 극력으로 피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 시민들이 전면전을 치를 만큼 강한 정치적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맥아서는 트루먼의 전략이 치명적 오류라고 판단했다. 그는 제한전이 “새로운 그리고 피를 더 흘리는 전쟁을 부를(beget new and bloody war)”따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한전이 이미 국제연합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그가 대안으로 내놓은 전략은 중국에 대한 전면전이었다. 만주의 비행장들을 공격하고 중국 연안을 봉쇄하고, 대만의 국부군을 동원해서 중국 본토에 전선을 형성한 다음, 50개 가량의 원자탄을 중국 도시들에 투하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맥아서는 거듭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지시를 어겼다. 치명적이었던 것은 그가 합참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오마 브래들리(Omar Bradley) 장군은 2차대전에서 유럽의 연합군을 지휘했었고 유럽을 중시했다. 그래서 맥아서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브래들리는 중국에 대한 전면전은 서 유럽을 소련의 위협에 내맡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전면전은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적과 치르는 잘못된 전쟁"(the wrong war at the wrong place at the wrong time and with the wrong enemy)이 되리라는 그의 주장에 맥아서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청문회가 끝나자, 맥아서에 대한 미국 사회의 지지는 사라져버렸다.
전략에 관한 대결에서 맥아서는 트루먼에 졌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먼저, 트루먼의 희망과는 달리, 제한전은 이내 중국과의 휴전을 부르지 못했다. 휴전 협상은 1951년 7월에 시작되었지만, 전쟁은 두 해 동안 이어졌다. 협상에서 공식적으로 장애가 된 것은 중공군과 북한군 포로들의 강제 송환 여부였다. 그러나 실질적 장애는 제한전과 휴전 협상이 병행되는 상황에선 중국이 미국의 확전을 걱정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인명 피해를 걱정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인명 피해가 많이 나는 전쟁을 선호했고, 미국의 전력을 총동원하지 않는 제한전은 중국의 그런 태도에 맞는 전쟁 형태였다.
그래서 맥아서가 떠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미국은 맥아서의 전략을 진지하게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1952년 1월에 트루먼 대통령 자신이 중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맥아서가 주장한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소련에 보내자고 제안했다. 석 달 뒤엔 합참이 원자 무기들의 전술적 사용을 추천했다. 당시 국제연합군을 지휘한 마크 클라크(Mark Clark) 장군도 원자 무기를 사용하는 계획을 미국 정부에 건의했다. 트루먼의 후임자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우어 대통령은 협상이 깨졌을 때 원자 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영국 경제학자 나이올 퍼거슨(Niall Ferguson)은 '거인: 미국 제국의 대가'(Colossus: The Price of America’s Empire)에서 맥아서의 주장이 전략적 타당성을 지녔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으로 하여금 포로들의 자발적 송환 문제에서 마침내 물러서도록 설득한 것은 바로 이런 뒤늦은 위협이었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맥아서의 주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입증된 셈이다. 제한전은 전쟁의 종결을 이루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원자전으로의 확대의 위협만이 성공했다. 맥아서의 주장을 번복함으로써, 트루먼과 합참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 전쟁을 두 해 넘게 연장시켰다.
결국 미국은 이길 수 있었던 전쟁을 비기고 끝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도, 막상 얻은 것은 너무 적었다. 거의 무너졌던 북한은 되살아났고, 중국은 아시아의 강국으로 자라났고, 한반도는 영구적으로 분단되었다.
제한전을 둘러싼 맥아서와 트루먼의 갈등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선택의 폭을 미리 제한하는 일은 적과의 대결에서 결정적 약점이 되어 목표를 이루는 것을 어렵게 한다. 제한전을 추구하는 미국의 치명적 약점은 월남전에서 다시 입증되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과정에서 미국은 이런 교훈을 어겼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처음에는 모든 수단을 써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북한은 이내 핵무기 페기를 위한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라크 전쟁이 예상보다 훨씬 어려워져서 다른 곳에 돌릴 군사적 자원이 줄어들자, 미국은 북한 핵무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뒤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북한이 오히려 협상을 주도하고 미국은 자신이 정한 기준이나 시한을 번번히 거두어 들이는 행태를 보였다. 모두 위의 교훈을 어긴 업보다.
이제 북한은 얻을 것을 거의 다 얻었다. '6자 회담’을 실질적으로 파산시키고 자신이 그렇게도 열망했던 미국과의 양자 협상을 이루었다. 자신이 바라는 선에서 미국과 타협하겠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서도,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은 모두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얻을 것이다.
반면에, 미국이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얻을 가능성도 시간이 지날수록 적어진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도 가까운 미래에 큰 진전이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모두 잘 안다, 미국이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북한을 압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런 압박이 없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합리적 정책을 내세웠다. 미국과 힘을 합쳐,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북한이야 물론 그런 정책에 반발하고 위협하겠지만, 우리 시민들은 그것을 떠받쳐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우리가 북한의 핵무기를 미국의 일로 여기는 태도다. 핵무기는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위협적이다. 지금 우리가 미국과 협력하여 그것을 없애지 못하면, 우리는 늘 핵무기의 그늘에서 살게 될 것이다.
복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