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동학농민기념사업회(회장 강효일)는 25일 상주 북천공원 식수대 옆에서 ‘상주동학농민혁명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제막식에는 성윤환 국회의원, 안성규 상주부시장, 임학빈 상주교육장 및 상주동학농민기념사업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해 1894년 농민항쟁의 뜻을 새로 새겼다.
행사는 식전행사로 놀이패 신명의 길놀이와 전통무용학원의 정수정 원장의 살풀이 춤으로 114년 전의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농민혁명군들의 원혼을 달래는 것으로 시작했다.
상주농학농민항쟁 기념비는 동학농민혁명 100년을 맞이하는 1994년 동학농민의 뜻을 기리기 위해 상주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발족, 학술대회 및 연극공연, 미술기념전, 합동위령제를 거행하고 1994년 상주시 가장동 경북대학교 상주캠프스 앞 소천교 공원내에 기념상을 건립했으나, 2008년 7월경 국도3호선 확장공사로 인해 훼손되어 새로 건립하기로 뜻을 모아 이날 새로운 비를 건립했다.
강효일 기념사업회장은“동학농민정신의 숭고한 뜻을 왜곡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못한다”면서“동학농민혁명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다”라고 말했다.
상주의 동학농민혁명사는 1862년 황문규를 상주접주로 임명되어 있는 가운데, 1891년 농민수천명이 상주 이안 양범리 적막앞에 모여 함창관아를 점령하고 아전들의 집을 불태우는 등 격렬한 저항을 하는 함창농민항쟁이 일어났고, 1894년(4227) 동학교주 최시형의 기포령 이후 9월18일 북접의 상주농민군이 봉기했다.
이해 9월22일 농민군 수천명이 상주성을 점령하자 9월28일 일본군이 상주성을 공격해 농민군 100여명이 학살당하고 패퇘했다. 9월29일 조정에서 상주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영남소모사를 임영하고 10월19일 민보군을 흡수하여 소모영을 설치했다. 10월22일 태평루에서 농민군 9명 처형을 비롯해 수십명의 농민군을 처형했다.
1894년 12월18일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이 보은 북실에서 접전을 벌여 농민군 2600여명이 살육을 당했다. 1895년 상주 소모영이 해체됐다.
황창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