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키워본 사람은 개가 얼마나 인간의 위계를 잘 파악하는지 키워본 사람은 잘 안다. 밥을 다른 사람이 계속 줘도 그 집 가장을 자기 주인으로 알거나 어린이는 무시한다거나, 그런 일은 전혀 없다. 그것은 개 나름대로의 본능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생활 속에서 이레이더를 작동시킨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면서나 계산서를 갖다 달라고 할 때 직원이 어느 손님과 눈을 맞추는지 또는 계산서는 누구 앞에 내려놓는가를 보라. 그 곳에서 사회적 위치가 결정된다. 대충 나이가 많은 남자, 남녀가 같이가면 남자, 남자가 없으면 나이가 많은 여자. 이런 순위인데 단 노인과 같이 가면 무조건 젊은 사람을 우선으로 친다. 노인차별에는 양성도 평등하다. 최근에 부모님이 밥을 사겠다 해서 호텔 식당에 갔다. 철없는 딸 덕에 나의 부모님은 매우 ‘young’한 70대이시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주문받는 분이 자꾸 내게 설명하고 묻고 하는 것이다. 계산서도 내 앞에 살짝 놓고 갔다. 노인은 말귀도 못 알아듣고 경제력도 없다고 보는 거라며 부모님께서 웃어 넘겼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바로 그렇다. 병원을 가도 치료 수술 등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식과 같이 오라는 소리를 듣고, 쇼핑을 가면 돈을 들고 가도 점원이 의례 무시를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손자도 없고 귀도 멀쩡한 나의 어머니께 “할머님” “할버님”하며 유치원생에게 말하듯 또박또박 천천히 크게 말하는 잔인한 친절을 마구 베푼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평등 지향 사회가 됐다. 부의 재분배, 배움의 평준화, 지역의 균형개발, 양성의 평등 등 참으로 여러 가지에서 조급하게 평등을 조른다. 하지만 몇 년 안가서는 세월의 흐름으로 아주 평등하게 모두 사회의 약자로 전락한다. 과거 그 사람이 고관대작이었건, 평범한 사람이었건, 부자였건, 넉넉하지 못했건, 노인으로 인식되는 순간. 이해력이 떨어지고, 사리판단을 못하고 결정권도 없고, 더욱 결정적으로 경제력이 없는 2등 시민으로 격하된다. 앞으로 젊은 인구는 줄고 노인인구는 늘어나는 고령사회가 될 텐데 소수의 권력을 가진 젊은이들이 다수의 노인을 차별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건강증진을 위한 세미나에서 어느 일본교수사 한 주장이다. 노인의 건강을 위해 해야 할 일 들을 열거하면서 절대 지갑을 남에게 넘기지 말라고 했다. 신용카드도 그대로 유지하라고 한다. 이 사회는 더 이상 노인의 지혜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경제적 주체로 남아있는 자만이 존중받는 것이 현실이다. 소비의 주체로라도 남아야 사람대접을 받는다. “경제권 놓지 말아야 대접받아” 맹목적이고 숭고한 자식 사랑에 눈이 먼 대한의 부모들이여! 자식 사랑은 교육시키는 것으로 끝내자. 재산은 생전에 절대 나눠주지 말라. 어느 광고에서 말하듯 노인의 인생은 길다. 노인이 원하는 것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사회적 약자에게 베푸는 동정과 배려다.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중과 대접이다. 이제는 노인 존중도 돈 주고 사야하는 세상이 왔다. 돈 주고 사자. 노인도 돈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회는 바뀐다. 기업도 실버서비스 사업에 투자하고, 식당가도 웨이터가 눈 맞춰주고 백화점에 가도 점원이 얼른 뛰어온다. 자식에게 낯이 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이런 주장을 펴면 어머니가 그러신다. 돈 들고 가도 무시하더라. 경제력 있는 노인인구가 임계질량에 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예비 노인이다. 기다리시라. 우리 세대는 노인이 되어도 절대 경제권을 놓지 않아 멀리서 흰머리가 얼른 거리만 해도 버선발로 뛰어나와 모시는 사회를 구축하리라. 회장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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