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내부가 요동치고 있다. 눈에 띄는 계파 갈등 양상이나 뚜렷한 전선 확대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가 않다. 각 계파간 결속을 다지기 위한 모임이 잦아지는가 하면 계파 실세들의 보폭도 갈수록 빨라지는 등 당내 이상 기류가 물밑에서 감지되고 있다. 당내가 이처럼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당내 권력 구도를 둘러싼 계파간 지각 변동이 일어날 사전 징후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당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겉으로는 무(無)계파를 표방하는 중립 성향의 의원 중 상당수도 어느 쪽에 줄을 설지 손익 계산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 같은 기류 변화의 이면에는 한나라당 내부의 위기감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촛불정국 이후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경제위기라는 악재까지 겹쳐 이명박호(號)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청와대에 힘을 실어주고 방향타를 제시해야할 여당이 힘을 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 잇따라 비판을 쏟아내놓고 있고, 종합부동산세법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당내 지도부 내부에서마저 이견이 나오는 등 당내가 안팎으로 어수선한 상황이다. 지난 17일에는 그동안 정치현안에 언급을 자제해왔던 박근혜 전 대표가 경제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대북정책과 경제정책을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했다. 당내 주류계로서는 안팎으로 당내가 어수선한 상황인데도 당을 장악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마땅한 구심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친이계가 소(小)계파 난립으로 사분오열하는 양상을 보이자 친박계와 접촉하는 의원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주이야박(晝李夜朴, 낮은 친이계 밤은 친박계), 월박(越朴, 친박계로 전향), 복박(復朴, 친박계로 복귀)이라는 신조어가 당내에서 유행할 정도다. 하지만 공성진 최고위원은 19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친박계 쏠림 현상에 대해 "정권이 출범한지 일년이 채 되지 않고 앞으로 다음 대권 주자가 분위기를 잡아가려면 최소한 2년 이상 남아 있다. `월박이다, 복박이다`하는 현상을 사실은 목도할 수가 없다"고 부인했다. 물론 차기 대권 구도가 명확히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러내놓고 친박계로의 전향을 선언하는 의원은 없다. 하지만 친박계의 세력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라는 게 여의도 정가의 정설이다. 친이 원로계의 대부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초·재선 소장파 MB직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요즘 들어 부쩍 대외 활동의 보폭을 넓히고 있고 친이재오계에서 이재오 전 의원의 복귀를 부르짖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지배적인 해석이다. `권력 사유화 논란` 이후 대외 활동을 자제해왔던 정두언 의원이 당내 국민소통위원장직을 맡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전 부의장의 이 같은 행보는 주류계의 결집을 도모하는 동시에 친박계의 세력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이 전 부의장이 직접 조정자 역할을 떠맡으면서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이탈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이 전 부의장이 당내 큰 어른으로서 MB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형님으로서 전면에 나서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측근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친이계 의원들은 여권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이른바 `이재오 역할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조기 복귀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이 지난 1일 안국포럼 출신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어려운 기간일수록 멀리 보고 준비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한 이 대통령의 믿음이 워낙 확고하기 때문에 이 전 최고위원이 복귀할 경우 언제든지 중용될 것이 확실한데다 정치 상황이 급변할 경우 실제로 조기 귀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반면 지난해 대선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던 친박계는 최근 발언의 수위가 조금씩 높아지는 모습이다. 박 전 대표가 지난 17일 정부의 인사 문제, 경제 정책, 대북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 대표적이다. 친박계의 이 같은 모습은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복당 이후 착실히 당내 지반을 확대해온 자신감의 반영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당과 정부가 어려운 상황에서 계파 논리에만 치우쳐 `어깃장`을 놓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여당 내 야당`이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이에 대해 허태열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의 언급은 비보도를 전제로 한 내용인데 국회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인 만큼 특별한 것은 없다"며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있다 보니까 주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해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허태열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집권 전반기에는 자기 신용을 갖고 펼쳐 나가게 하는 것이 박 전 대표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기존의 조용한 행보를 계속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박계의 한 의원도 "박 전 대표가 총선 이후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발언을 자제했을 때는 `몸 사리기 한다`, `현안에 대해 발언을 해야한다`고 비판하더니 이제는 `너무 앞서 간다`고 하느냐"며 "박 전 대표는 평상시대로의 행보를 하고 있을 뿐 그 이전과 그 이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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