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실물경기에 한파를 몰고 오면서 규모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이 투자와 생산을 줄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도 올 3분기 호실적을 기록하며 ‘표정관리’ 중인 기업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세계 시장에서 상위권에 위치한 국내 일부 기업들이 해외 경쟁사들의 적자 행보 속에서도 홀로 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안정적인 재정과 기존에 갖춰놓은 시장 리더십을 바탕으로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높이며, 장기적으로 시장지배력을 더 탄탄히 다지고 있다. ◇ 삼성전자, 치킨게임 승자될 듯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은 올 3분기에 2400억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주요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경쟁사인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4000억 원 이상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2년에 걸친 D램 반도체 시장의 불황으로 업계들의 ‘치킨게임’이 지속된 것을 감안하면 흑자 달성 자체가 경이로운 수준이다. 이번 실적을 통해 삼성전자는 경쟁사들이 무너질 때까지 ‘제 살 깎기’ 식의 출혈경쟁을 벌여야 하는 치킨게임에서 확실한 독주체제를 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2위인 하이닉스와의 10% 이상 격차를 벌렸다. 삼성전자의 D램 시장점유율은 1년 동안 30%를 상회, D램 시장이 도약할 경우 이는 곧바로 삼성전자의 실적에 그대로 반영된다. 삼성전자가 ‘군계일학’의 성적을 거둔 것은 독보적인 기술력과 미래를 예측한 투자가 그대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쟁사 대부분이 아직 70~80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지만,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60나노 공정 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올해 4월부터 50나노 공정을 이용한 제품 생산에도 착수, 경쟁사와의 생산성 격차를 더 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DDR2보다 전력 소모는 적으면서도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DDR3를 이미 지난해 초부터 PC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2010년 시장점유율 50%를 돌파하며 시장 주력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DDR3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신증권 반종욱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 산업 재편 시기를 거쳐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 변화가 예상된다”며 “산업재편 이후 삼성전자의 독보적인 시장 점유율 확대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는 원가 경쟁력을 통한 현금 창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반도체 업체들 중 유일하게 설비투자를 확대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시킬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포스코, 6조 투자 예정대로 비교적 튼튼한 재정과 높은 영업이익률을 갖춘 포스코는 불황기에 투자를 확대해 낮은 비용으로 질 높은 설비를 확보하는 경우다. 포스코 이구택 회장은 최근 열린 사내 운영회의에서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년에 예정된 투자를 계획대로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내년 6조 원 규모 상당의 투자를 계획한 바 있다. 포스코는 지난 3분기에 전분기 대비 5.23% 늘어난 1조983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국내 기업 가운데 1위에 올랐다. 특히 영업이익률 역시 22.5%에 달해 최근 철강업계가 주춤하는 가운데 나 홀로 성장을 진행 중이다. 철강업계 1위인 아르셀로 미탈이 “생산량을 35%까지 축소하겠다”고 밝힌 것도 포스코에게는 큰 기회다. 고정고객 비율이 높고, 뛰어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포스코는 감산 계획이 없다. 또한 최근 경기 침체로 유리한 가격에 M&A를 시도할 수 있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게 됐다. ◇ 삼성重, 조선업황 부진 속 잇단 수주 조선업계가 최근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삼성중공업은 최근 잇단 수주 성공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8월 말 1조4000억 원 규모의 드릴십 2척을 수주한데 이어 9월에는 세계 최초로 1조 원 규모의 LNG-FPSO(부유식 원유 생산 저장장치)를 수주했다. 특히 지난달에는 2억5000만 달러 상당의 유조선 3척을 수주했다. 드릴십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삼성중공업은 가격경쟁력으로 조선시장에서 급부상했던 중국 업체들이 납기 지연과 안전사고 발생 등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되고, 이로 인해 자금난 등으로 선박건조 중단이나 도산 위기까지 발생하면서 이들의 고객사들을 자사 고객으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 STX, 공격적 투자로 선전 국내 중소 조선업계가 자금난으로 도산위기에 몰린 가운데, 최근 빠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STX의 선전도 눈여겨볼만 하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사들의 실적이 미미한 가운데 STX조선은 이달 13일 유럽 선주로부터 32만DWT급 초대형 유조선(VLCC) 2척(옵션 포함)을 3억1130만 달러에 수주했다. 또한 지난달에도 아시아 선주로부터 1억2000만 달러 규모의 벌크선 2척을 수주하는 등 올해에만 초대형 유조선 15척을 수주, 대형 고부가가치선 중심으로 선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세계 최대 크루즈·오프쇼어 선사인 아커야즈를 인수, 유럽-한국-중국을 잇는 글로벌 3대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STX그룹은 ▲STX유럽을 크루즈선·특수선 분야 ▲한국의 진해조선소를 고부가가치 대형 상선 건조 및 R&D센터 중심지로 육성하며 ▲중국 다롄조선소를 벌크선·자동차운반선 분야에서 각각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톱 조선소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 반해 현대차는 올해 2분기(50.6%) 대비 3분기 시장점유율이 4.9% 하락했지만, 3분기 원화 약세 시점에 파업으로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LIG투자증권 안수웅 리서치센터장은 “3분기 영업이익이 컨센서스를 밑돌았지만 8~9월 노조의 파업으로 생산이 감소할 때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4분기에는 수요 적체가 해소되고, 환율도 우호적이어서 가동률이 110%에 도달하고,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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