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그러나 교통사고 수준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하위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교통사고 후진국이란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인명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한몫을 하고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의 신속한 회복과 국민생활의 편익증진을 목적으로 1981년 제정된 법률이다. 그 당시 자동차 산업이 초기단계여서 이를 활성화하는 것이 정부와 자동차업계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를 낼 경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되면서 자동차 보급이 쉽지 않게 되자 이를 법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정책적인 배려에서 만들어진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보급에 따른 교통사고의 급증으로 법 제정 목적과는 달리 느슨한 처벌조항으로 인하여 교통사고 운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면서 피해자의 보호기능보다 운전자보호에 치우쳐 금전만능의 어두운 그림자를 키우게 하고 피해합의를 둘러싼 물의를 야기하는 등 부작용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제3조, 제4조로,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음주 등 11개 중대법규 위반 교통사고를 제외하고는 피해자와의 합의여부에 관계없이 공소권행사를 제한하여 가해자의 형사책임을 면제해 주는 특례규정이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은 가정이 파탄되고 엄청난 경제적 타격으로 고통의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가해자는 별일 아니었다는 듯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해 운전자의 형사책임이 면제되면서 인명을 경시하게 되고 안전운전 의식이나 적극적인 사고 회피의식이 크게 떨어져 교통사고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보다는 가해자,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우선시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폐해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폐지해야 한다. 형법 제268조 『업무상 과실·중과실 치사상죄』는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자동차 운전자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새 정부가 내세운 교통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해묵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폐지하는 대신 일본의 『교통사건 즉결재판 수속법』과 같은 대체 입법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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