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다큐멘터리3일`에서 집중 조명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던 가파도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제주도 주변에는 조그만 섬이 많이 있다. 무려 62개의 섬이 마치 본섬인 제주도를 호위하는 병사들처럼 사방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 8개 유인도와 54개 무인도가 있다.어미 섬인 제주 본섬과 아주 가까운 유인도는 가파도, 마라도, 비양도, 우도이며, 현경면에 있는 차귀도는 1970년대 말까지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다.제주도 본도와 48km 떨어진 추자군도에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가 있다. 추자군도의 4개 섬들은 해남 반도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마지막 빙하기 때 물속에 잠기면서 남은 땅이다.`가파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속하는 섬으로 동경 126°16′, 북위 33°10′에 위치한다.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5.5㎞ 지점인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본섬 중간에 있다.제주도의 부속 도서 중 네 번째로 큰 섬이다. 가장 높은 곳은 높이 20m 정도이며, 구릉이나 단애가 없는 평탄한 섬으로 전체적 모양은 가오리 형태를 이루고 있다.이 섬은 다양한 지명을 가지고 있는데, 섬 전체가 덮개 모양이라는 데서 따온 개도(蓋島)를 비롯하여, 개파도(蓋波島)·가을파지도(加乙波知島)·더위섬·더푸섬 등으로도 불린다.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무인도로 버려진 곳이었으나, 국유 목장의 설치를 계기로 마을이 들어섰다. 1751년(영조 27)에 목사 정연유가 소를 이 섬에 방목하면서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가파도는 1750년(영조 26) 제주 목사가 나라에 진상하기 위하여 소 50마리를 방목하면서 소들을 키우려고 40여 가구 주민들의 섬 출입을 허가했다. 오랜 세월 동안 무인도였던 가파도에 이때부터 다시 사람들이 살기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실은 그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나 왜구들의 약탈로 인하여 해상 방위 목적으로 아예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했다.그 후 18세기 말에 개간을 허락되면서 경주김씨, 진주강씨, 제주양씨, 나주나씨, 김해김씨 등이 `황개`와 `모시리` 일대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가파도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인데, 바로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된 계기가 된 곳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1653년 가파도에 표류했으리라 짐작되는 네덜란드의 선박인 스펠웰로, 그 안에 타고 있었던 선장 헨드릭 하멜이 `하란선 제주도 난판기` 와 `조선국기`를 저술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비교적 정확히 소개된 계기가 되었다.가파도는 고부 이씨를 비롯해 경주 김씨, 김해 김씨 등이 많고 과거에는 섬내 혼인이 자유로워 겹사돈을 맺는 경우도 많아 친인척들로 구성된 `남이 안 사는 섬`이다. 특히 가파도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살았던 내력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제주도 내에는 18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중 135기가 가파도에 있을 정도다. 가파도 주민들은 이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른다. 이 왕돌은 전형적인 남방식의 고인돌로 판석도 없이 지하 묘실을 만든 다음에 돌을 놓고 그 위에는 큰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이 특징이다.면적은 0.87㎢이고, 해안선 길이가 4.2㎞이다. 2008년 말 현재 인구는 312명(남 145명, 여 158명)이고 세대수는 132호이다. 경지 면적은 논은 거의 없고 밭 67.4ha, 임야 153.5ha이다.주요 농산물은 고구마·보리이다. 겨울 농사로 보리를 재배하고, 여름 농사로 고구마 등을 재배한다. 고구마는 수익성이 높은 경제작물로 개경 초부터 재배해 왔다.가파도의 청보리는 200년 전 개간 허가 이후 함께 유입되어 오랜 세월 동안 가파도 주민들 삶의 터전을 지어주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지어온 보리농사, 청보리밭에는 지긋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하다.보리농사를 짓는 김동옥 씨는 관광객들의 발길에 겪는 고충이 없냐는 질문에 오히려 즐거움과 추억을 드릴 수 있어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답했다. 청보리밭은 농사를 짓는 이에게도, 구경하는 이에게도 감사한 존재이다.2009년 제2회 청보리축제 때 청보리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을 잊지 못해 가파도에 정착한 김현진 씨와 가파도 여행 후 아이들을 이곳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결심한 정인경 씨 등 실제 청보리축제 이후 7가구, 20명이 이주해 가파도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힘겨운 삶의 상징이었던 청보리가 이제는 사람들을 모으고있다.땅이 한정되어 있어 호당 경지 면적이 적다. 따라서 농업은 부업이며, 어업이 주산업이다.주요 어획물로는 소라·전복·해조류·해삼·성게 등이 대부분이다. 해녀들에 의하여 김, 굴, 해삼, 전복, 소라 등이 채집된다. 근해에는 자리돔 어장이 형성되고 있다.법정 1개 마을인 가파도는 상동과 하동 등 2개의 마을로 되어 있고, 북쪽에 위치한 하동포구(下洞浦口)는 연륙 교통의 요지로 항만시설이 되어 있으나, 간만차가 심하고 수심이 낮아 불편하다.가파도 해역은 예로부터 거센 기류와 조류가 부딪쳐 나가는 수역이므로, 이곳을 지나는 외항선들의 표류와 파선이 잦았던 곳이다. 교육 기관으로는 가파초등학교가 있다. 이곳은 최남단인 마라도를 연결하는 요지이다. 모슬포항·가파도 구간 하루 2회의 정기여객선이 운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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