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아버지를 만날 수가 없다. 어디에 꼭꼭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학교에 가도 아버지 같은 남선생님은 드물고 여선생님이 훨씬 많다. 학부모 모임이 있어도 학부모회가 아닌 어머니회 모임이 됐다. 어쩌다가 아내와 아이에게 날아가 얼굴을 보고 다시 돌아와 혼자 밥을 먹는 기러기 아빠가 늘어만 간다. 옛날에 할아버지가 장죽으로 양은 재떨이를 땅땅 때려가며 집안을 호령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가 될 터이지만 오늘날의 아버지는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게 됐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오늘의 남편들은 텔레비전 채널권에서 주택 매매 선택권에 이르기까지 점점 아내에게 양보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입김이 센 엄마보다 힘이 없는 아빠를 속으로는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시시콜콜 참견하는 엄마보다는 좀 놓아두고 싶어 하는 아빠의 마음을 눈치 채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은근한 연민의 정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교육학자들이 ‘재단된 아이의 행동은 창의력을 잃게 한다’는 숱한 경고를 엄마들은 잊어버리고 아이들을 재단하려 들며 아빠들은 이를 말리려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높은 대학 진학률에 그 많은 등록금을 내고 무엇을 얼마나 공부하는지 보다 어느 대학에 가느냐는 데에 아이들의 미래를 걸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과연 얼마나 펼칠 수 있을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케냐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가 어떻게 편견과 차별을 딛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아직 읽지 못했지만 책명에서 오는 첫 느낌을 떠 올리곤 한다. 그 처음의 느낌이란게 책의 내용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나라 아프리카 케냐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오바마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간직한 꿈들이 결국 오바마에게 담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만들게 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우리에게도 아버지로부터의 꿈이 있다. 꿈을 주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으며 그 부모로부터의 꿈을 기억하지 않는 자식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아이들은 의사가 되어 병에 시달리는 인간의 고통을 극복해주고 싶다고 한다. 판검사가 되어 정의를 실현하고 불의를 퇴치하겠다고 한다. 과학자가 되어 노벨상을 받겠다고 한다. 선생님이 청소년을 바르게 이끌겠다고 한다. 목표와 그 목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들이 알차다. 논 팔고 밭 팔고 소 팔아 자식 교육시킨 지난날 우리 부모님의 소박한 꿈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가꾸어 온 아버지로부터의 꿈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뱃전에서 생선 부스러기나 먹으려고 낮게 나는 갈매기 보다 더 멀리, 더 높게 날고자 고독하게 몸부림치는 고독한 존재 ‘갈매기의 꿈’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서상준 제2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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