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산에 미쳐, 짧은 인생을 불꽃처럼 불태웠던 충북산악인 두 명이 설산에 영원히 묻혔다. 지난달 25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북벽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 실종된 직지(直指)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 등반대장(36)과 박종성 대원(41)의 영결식이 11일 오후 2시 청주 충북체육회관에서 엄수됐다. 영결식은 장례위원장인 연방희 충북산악연맹회장의 진행으로 고인의 가족과 친지, 동료 산악인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진혼곡으로 시작된 영결식은 묵념, 두 대원에 대한 약력소개, 연방희 충북산악연맹회장의 조사, 노익상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의 애도사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을 설산에 남겨두고 귀국할 수 밖에 없었던 동료 대원들은 두 대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통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노 부회장은 “강하다는 것은 이를 악물고 참는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했던 두 대원의 도전정신과 불꽃같은 열정의 상징이었던 고인들을 우린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남은 우리들은 두 대원이 그토록 동경하고 갈망하던 설산에, 신만이 그 품을 허락한다는 높은 그 곳으로 보내줘야 합니다”라면서 애도사를 힘겹게 읽어내려갔다. 그는 “산을 사랑해 늘 산과 더불어 살기를 바라던 고인들, 위험과 역경에 맞서서도 포기하지 않던 고인들의 열정, 그 고결한 정신과 맑은 표정은 우리 산악인 모두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면서 “두 대원이 경건한 산의 정적 속에서 편안히 잠들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 대원의 형 박종훈씨와 민 대장의 동생 민규형씨는 가족대표로 나서 “눈보라 몰아치는 설원에서 수색작업에 나서준 직지원정대원들의 노고와 영결식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모든 분들께 고인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면서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다 희생된 두 대원의 고귀한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남은 대원들이 못다한 그들의 꿈을 이뤄달라”고 눈물의 당부도 했다. 민 대장과 박 대원의 유해를 찾지 못한 직지원정대는 히운출리에서 채취한 흙과 여권.등산장비 등 두 대원의 유품을 유골함에 넣어 유족들에게 인계했다. 원정대를 이끌었던 박연수 대장은 영정 앞에 헌화하면서 “우린 너희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외치며 울먹였고, 가족들에겐 “우리만 살아돌아와 미안하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직지원정대 일원으로 북벽 루트 개척에 선봉대로 나섰던 민 대장과 박 대원은 첫 공격에 나선 당일 오전 8시30분께 베이스캠프와 마지막 교신을 한 뒤 연락두절됐다. 이후 원정대는 네 차례에 걸쳐 헬기수색을 벌이고 현지 셰르파 등을 동원해 수색을 계속했지만 끝내 이들의 등반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두 대원은 히운출리 6000m 인근 세락(빙탑) 부근의 (눈에 덮인)히든 크레바스에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원정대는 추정하고 있다. 북벽 신루트를 개척하게 되면 이 곳을 ‘직지루트’로 이름 붙일 계획을 세우고 힘찬 발걸음을 뗐던 민 대장과 박 대원은 끝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영면했다. 다음은 직지원정대 실종사고 주요일지(현지시각 기준) ▲8월27일: 네팔로 출국 ▲9월23일: 민준영.박종성.박수환 대원 베이스캠프(해발 4200m) 출발, 북벽 4900m 빙하지대서 비박. ▲9월24일: 박수환 대원, 컨디션 저하로 하산. 나머지 대원 해발 5000m지점 C1에서 등반시작 ▲9월25일 오전8시15분(한국시각 25일 오전11시45분): 해발 5400m 지점에서 마지막 교신 후 현재까지 연락두절 (민 대장의 마지막 교신은 "좌측에서 우측콜로 진행하기 위해 설사면 올라섰다. 촬용도 가능하니 살펴보라. 컨디션 최상이다. 이석으로 무선종료한다) ▲9월26일: 김동화.박수환 대원 수색위해 베이스캠프 출발, 관찰실패. ▲9월27일 오전9시: 1차 헬기수색, 50분 뒤 2차 헬기수색(발자국 발견) ▲9월28일 오전 현재: 베이스캠프에 있는 대원.현지 셀파동원 수색 ▲10월1일: 헬기수색 ▲10월2일.3일: 현지 셰르파 정밀수색 ▲10월5일: 사망추정, 원정대 철수결정 ▲10월10일:직지원정대 귀국, 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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