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애니메이션스튜디오의 6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엔칸토:마법의 세계'('엔칸토')는 디즈니의 현재를 명확히 알려준다. 콜롬비아를 배경 삼아 다양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며, 특별한 능력 하나 없는 평범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성숙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말할 때 자연스럽게 구겨지는 미간과 곱슬머리의 질감까지 표현해내는 컴퓨터그래픽은 최고 수준이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유의 음악 역시 완성도가 높다. 말하자면 '엔칸토'는 디즈니가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이 영화 주인공은 콜롬비아 산악 지대의 낙원과 같은 자연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마드리갈 가족이다. 마법의 축복을 받은 이들 가족에겐 모두 특별한 힘이 있다.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고, 괴력을 가졌으며, 꽃을 피워낼 수 있다.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고, 동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으며,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그런데 유독 미라벨에게만 아무 능력이 없다. 이 소녀는 자신의 평범함에 자주 실망하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족 모두가 마법의 능력을 잃게 되자 평범하기만 한 미라벨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제작 기간만 무려 5년이 걸린 대작이다. 2016년 '주토피아'를 전 세계적인 성공으로 이끌며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떠오른 바이런 하워드가(Byron Howard)가 연출을 맡았다.현재 뮤지컬계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극작가 겸 연출가 겸 작곡가인 린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가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 애니메이션계와 뮤지컬계의 최고 실력자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라는 것이다.그렇다고 이 작품이 이들의 힘으로만 만들어진 건 아니다. 수많은 스태프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다. 이 스태프 중 한국인이 있다. '엔칸토'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애니메이터 약 90명이 참여했는데, 그 중 한국 출신 애니메이터가 두 명 있다. 바로 최영재(51)·윤나라(37) 애니메이터다. 이들을 2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두 사람은 디즈니에서만 각각 15년, 8년을 일했다. 최 애니메이터는 '볼트'부터 윤 애니메이터는 '겨울왕국'부터 참여했으니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엔칸토'가 현재 디즈니가 가진 능력의 정점을 보여준다. 60번째 영화라고 자신있게 내세울 정도로 퀄리티가 높은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두 사람은 그러면서 "다양한 문화가 담긴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특정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최 애니메이터는 주인공인 미라벨이 나오는 장면들과 마드리갈 가족이 모여서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 이들이 함께 춤추는 장면 그리고 액션 장면 작업을 했다. 윤 애니메이터는 미라벨의 언니인 이자벨라의 노래와 춤 시퀀스, 그리고 미라벨과 할머니가 함께하는 장면 등에 참여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엔칸토'가 재택 근무로 만들어졌다고 들었다."(최영재 이하 최) 내게 '엔칸토'는 재택 근무로 만든 두 번째 영화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엔칸토'를 할 땐 적응이 됐다. 집이 작은 스튜디오가 됐다. 회사에선 일만 하면 됐지만, 집에선 일도 하면서 청소도 하고 음식도 해야 했다. 게다가 스튜디오에서처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수 없다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서 잘해냈다고 생각한다.""(윤나라 이하 윤) 코로나 전에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동료들과 매일 소통했다. 그거 없이 일하려니까 이상하더라. 대신 아침 9시마다 화상으로 동료들을 만났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콜럼비아 춤이 나오는데 그 춤을 직접 보고 배울 기회를 못 갖는 게 아쉬웠다. 댄서들의 동작을 직접 보는 게 아니라 영상으로 봐야 했다. 그래도 매우 잘 만들어진 것 같다."-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윤) '엔칸토'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 요소가 잘 살았다는 게 좋았다. 정말 뮤지컬 같았다. 게다가 뮤지컬 요소에 콜롬비아 문화가 잘 스며들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린마누엘 미란다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최) 나도 음악을 꼽고 싶다. 신나면서 감성적인 노래가 많았다. 여기에 콜롬비아 전통 춤부터 아주 트렌디한 춤이 한 데 어우러졌다. 음악과 춤이 잘 조합됐다. 아름다운 색채로 보여지는 영상미는 디즈니가 가진 정점의 기술력으로 표현됐더라. 입체적인 사운드, 선명하고 큰 화면으로 관람하길 바란다."-'엔칸토'가 앞서 나온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최) 능력이 없는 미라벨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주인공이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며 가족과 화합하는지 그 과정을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따뜻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처럼 1인 가족이 보편화된 시대엔 내가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또 우리 가족은 우리를 잘 알고 있는 되돌아볼 기회다.""(윤) 개인적으로 미라벨 캐릭터에 공감을 많이 했다. 누구든지 나 자신은 능력이 없고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아마 관객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콜롬비아 가정은 여러 세대가 함께 산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삼촌과 이모가 굉장히 많지 않나. 이런 가족 환경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거다."-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계속해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게 된 건가."(최) 회사 자체가 워낙 다문화적이어서 그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흡수됐다고 본다. 변화의 시점이 언제라고 말하긴 어렵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서서히 더 넓게 퍼져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윤) 저희는 항상 다문화적인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회사에 있으면 미국 회사라는 게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회사 자체가 다문화적이다. 다양성은 정말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다. 어떤 문화든 그 문화에서 나오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는 항상 그걸 찾으려고 한다."-다양한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기 위해 어떤 작업을 거치나."(윤) 그 문화를 공부한다. 콜롬비아라고 하면, 그쪽 문화를 알려주는 컨설턴트가 있어서 그 분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것 외에도 스스로 그 문화의 역사를 공부하기도 한다. 가령 이런 거다. 우린 스패니쉬 살사와 콜롬비안 살사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해 영화에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내가 특정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는 걸 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를 알아가는 건 재밌는 일이다.""(최) 윤나라가 말한 것처럼 영화가 담아내려는 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전문가와 협업한다. 그분들에게 그 지역만의 특색을 전달받고 우린 그걸 공부해서 영화에 담는다. 이 영화는 춤이 중요하다보니까, 콜롬비아 춤을 전문적으로 추는 댄서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영화 속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이들의 치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머리카락이 어떻게 찰랑거리는지까지 말이다. 콜롬비아 사람들 특유의 제스쳐도 공부해서 담았다. 콜롬비아 사람들이 디테일하다고 할 만한 것들을 넣은 것이다."-아이디어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받나."(최) 일단 나를 내가 만들고 있는 그 신(scene) 안에 데려다 놓는 게 중요하다. 캐릭터의 감정과 입장에 이입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몰입하다 보면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영화에 다 담겨 있다.""(윤) 최영재가 말한 것처럼 내가 그 신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직접 연기해본다. 이번처럼 재택근무가 아니라 스튜디오에 출근해서 작업할 땐 나 자신을 카메라로 직접 찍어보기도 했다. 다만 이번에 내가 맡은 캐릭터는 모두 여성이어서 나 자신에게서 끌어내온 건 많지는 않다. 컨설턴트들과 이야기하면서 영감을 많이 얻은 편이다. 특히 콜롬비아 댄스 전문가와 많이 친해졌다. 그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이것저것 시켜보기도 했다."-'엔칸토'를 작업 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옷감과 헤어 스타일을 표현하는 기술은 정말 한계를 초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엔 기술 부분을 담당하는 테크 애니메이터가 따로 있다. 이 분들과 협업하면서 옷감과 머릿결을 표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보면 알 거다.""(최) 윤나라 말이 맞다. 나 역시 옷과 헤어가 잘 나왔다고 보다. 이런 디테일 덕분에 우리 애니메이션이 더 빛난다고 본다."-한 장면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윤) 시퀀스마다 다르다. 대체로 한 시퀀스를 만드는 데 약 20명의 애니메이터가 동원된다고 보면 된다. 대개 한 시퀀스엔 5~6개 장면이 있는데, 그러면 거의 6~7주가 걸린다.""(최) 윤나라 말처럼 장면마다 다르다. 캐릭터가 한 명만 나오는 장면이라면 쉽게 끝날 거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집에 가족이 모두 모여있는 장면이 많았다. 그러면 일하는 시간 역시 늘어난다. 여기에 또 캐릭터에 움직임을 많이 줄수록 시간이 더 걸린다. 정확히 어느 정도 걸린다고 말하기는 어럽다."-아마 한국에도 디즈니에서 일하는 걸 꿈꾸는 분들이 있을 거다. 이분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윤) 꿈을 크게 가져라. 꿈을 크게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디즈니에서 일할 수 있을 거다. 지금 디즈니에서 일하는 동료들 중에도 자신이 디즈니에서 일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최) 3D 애니메이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성실함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은 이미 그걸 갖고 있지 않나. 한 번에 가려고 하기보다는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면 언젠가 디즈니에 와 있을 거다."-마지막으로 한국 관객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최) 격리된 공간에서 힘든 생활을 해온 분들이 있을 거다. '엔칸토'를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으면 한다.""(윤) '엔칸토' 많이 사랑해달라. 재택근무로 작업을 하면서 의심이 많았다.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참 놀랍더라. 디즈니의 60번째 영화라는 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정말 멋진 영화다. 꼭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