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블루스 음악의 선구자인 가수 박광수가 별세했다. 향년 82세.9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1970년대 '아름다운 강산', '잔디'를 탄생시킨 신중현 밴드 '더 맨'의 리드보컬 박광수가 전날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 1940년 포항에서 사업가 집안의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중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에 들어가며 음악을 접하기 시작했다. 1965년 오디션을 거쳐 미8군 클럽에서 활동했으며, '봄비'의 가수 박인수와 함께 하우스밴드에서 활동했다. 당시 블루스 등 흑인음악을 주로 불렀으며, 드문 R&B 가수로 명성을 얻었다.1968년에는 그룹 영사운드의 보컬로, 1971년에는 김상희 스페셜쇼 멤버, 최이철 등과 함께 그룹 영에이스 보컬로 활동했으며,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신중현이 1972년 결성한 더 맨의 리드 보컬로 나서 '아름다운 강산'과 '잔디'를 녹음했다. 이선희 등이 재해석한 '아름다운 강산'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73년 첫 솔로 음반을 냈으나, 한 곡도 제대로 방송에 나가지 못한 채 금지됐다. 이후 2007년 솔로 앨범 '박광수 2007 아름다운 날들'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당시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음악을 지킬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음악인에게 은퇴란 없다. 무대에서 공연하다 죽는 것이 꿈"이라는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후 틈이 날 때마 무대 위에 올랐다.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박광수는 R&B 솔 가수로 미군클럽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흑인병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는 차차차, 보사노바 리듬까지 자유롭게 구사할 정도였다. '아리랑도 R&B 솔 가수처럼 부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이어 "'블루스 음악을 하면 가난하다'는 신중현의 권유에 따라 록음악으로 전향했다. 묵직하고 중후한 창법으로 '더맨' 시절에 활약했다"며 "현재 우리나라 미8군쇼 & 그룹사운드 1세대 모임 '예우회' 회원으로 우리나라 록 음악 발전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덧붙였다.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가산동 쉴낙원 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