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신 외할머니는 유명한 한학자 집안의 따님이었다. 이화 여전을 졸업하고 한학을 공부한 할머니다. 우리가 외가에 갈 때마다 염천(炎天)에도 모시 한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꼭 버선을 신었다. 그뿐만 아니라 먹을 갈아 난을 치고 가야금을 뜯곤 했다.    어린 우리들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비롯 논어(論語) 등의 내용과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을 누누이 일러 주곤 했다. 필자가 다소 보수적이고 강골(强骨)인 성향도 외할머니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서인가 보다. 뇌리에 각인된 할머니 말씀은 음미할수록 지혜가 담긴 내용이 전부다. 그럼에도 세진(世塵)이 많이 묻어서인지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가 지난날 우리들에게 들려준 가르침 중 몇 가지를 언급한다면 이러하다. 타인 앞에서 말을 할 때는 세 번 침을 삼키고 발설할 것과, 남이 안 봐도 보는 것처럼 언행을 행하라고 했다. 또한 남에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 중 특히 남에게 지는 게 어찌 이기는 것인지 당시 어린 맘엔 좀체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할머니의 말씀 뜻을 알만 하다. 얼마 전 소소한 일로 타인과 경쟁한 후 더욱 남에게 지는 게 이기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지난날 할머니 말씀이 부쩍 가슴에 와닿는다.  집 앞 호숫가 일대를 새벽 조깅 하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를 위해 새벽 5시면 기상하여 아침밥을 지어놓는다. 그리곤 이일이 끝나면 서둘러 집 앞 호숫가 둘레 길로 나간다. 이때쯤이면 근동(近洞)에서 이곳에 운동 나온 주민들을 적잖이 대할 수 있다.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엔 흡사 말을 연상케 하는 여인이 있어 무척 인상적이다. 키도 훌쩍 커서 다리가 길다. 이런 신체적 조건을 갖춘 탓인지 경보(競步)가 참으로 빠르다. 필자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그녀를 따라갈 재간이 없다. 그 모습이 마치 갈기를 바람에 휘날리며 광야(廣野)를 질주하는 한 마리 말과 같다. 두 팔을 힘껏 하늘을 향해 내젓고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성큼성큼 내딛는 걸음걸이가 영판 말(馬)이다. 때론 바람 같다고나 할까. 이 모습이 매우 역동적이기도 하다.    솔직히 그녀 뒤를 매일 뒤따르다 보니 어느 날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이에 쓸데없이 경쟁 심리도 자연 발동했다. 이러한 심리는 그녀에게 뒤처지는 게 싫어서였다. 다음 날 무릎 보호대까지 갖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대략 0.814km 남짓한 호수 둘레 길을 뛰기 위해서다. 막상 뛰려니 마스크 착용으로 숨이 차다. 땀도 비 오듯이 흘러서 온몸을 적셨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가까스로 호수 둘레 길을 몇 바퀴 완주했다.     그날따라 `걷는 말`이었던 여인이 여느 날보다 걸음걸이가 매우 힘이 없었다. 덕분에 필자가 그녀를 앞지를 수가 있었다. 이러한 무모한 오기(傲氣)는 호숫가를 조깅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일었다. 유독 `걷는 말` 여인을 표적으로 며칠 동안 호숫가 돌기 경쟁을 펼쳤다. 급기야는 이 경쟁을 벌인지 며칠 만에 지독한 몸살이 찾아와 하루를 끙끙 앓았다.  세 딸들이 어렸을 때, "타인과 경쟁하기보다 나 자신과 항상 싸움을 벌여라"라고 밥상머리 교육을 시켰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또한 무익한 일에 열정을 쏟은 듯하여 후회스러웠다. 그래 이젠 체력에 맞게 유유자적 걷고 뛰기를 반복할까 한다. 이 깨우침은 타인과 지나친 경쟁은 심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경험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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