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번지에 가면 조선조 마지막 임금의 무덤인 홍릉과 유릉이 있다.  홍릉은 제 26대 고종(1852~1919)과 고종의 비(妃) 명성황후의 합장릉이고 유릉은 27대 마지막 임금인 순종과 순명효황후 그리고 순정효황후가 같이 모셔진 동봉3실의 합장릉이다.  1895년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는 그 당시 서울 청량리에 예장되었으나 능(陵)이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론이 있어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이곳으로 이장해와 고종과 함께 합장하였다.  순종의 첫째부인인 순명효황후 역시 지금의 서울 어린이대공원자리에 안장되었다가 1926년 순종황제가 승하하자 이곳으로 이장해 합장릉을 만들었고, 1966년 순종의 두 번째 부인인 순정효황후가 죽자 그 역시 이곳에 합장해 유릉은 세 사람의 합장릉이다.  3실 합장릉은 우리나라 왕릉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일제강점기 그들의 감시 하에서 억압에 찬 울분으로 생활하셨을 삶을 생각하면 사 후에라도 한곳에서 맘 편히 얘기할 수 있는 기회의 장소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한다.  이 두 릉은 고종이 왕위에 올라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대한제국을 선포하였기에 왕이 아닌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므로 양식도 조선왕조의 양식이 아닌 명나라 황제릉을 본받아 능역을 꾸며 놓았다.  이는 중국 남경에 있는 태조 홍무제(주원장)의 효능을 본떠서 조성했기에 능 앞 제향공간은 왕릉의 작은 정자각 대신 큰 침전이 자리 잡았고, 석물들도 배전 앞으로 옮겨 다른 왕릉에서 보지 못한 기린과 사자, 코끼리, 해태, 말 등 여러 동물들이 양쪽에서 묘역 입구를 지키고 있다.  이 묘역들 경내에는 고종의 아들 영친왕과, 영친왕비(妃), 의친왕, 황세손인 이구, 고종의 막내딸인 덕혜옹주 그리고 황제의 여러 후궁들의 묘도 모두 같은 경내에 조성되어 있다.  이 두 릉을 마지막으로 조선왕릉의 역사는 끝이 났고 519년이나 지속된 한 왕조의 왕과 왕비의 무덤은 현재까지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곳의 산세는 남양주시 화도읍 천마산(810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용맥이 백봉산(587.2m)을 일으키고 여기서 남서로 방향을 틀어 이 묘역의 주산인 수리봉(485.5)을 일으켰다.  주산에서 힘차게 내려오는 간룡(幹龍)은 그대로 내려가고 그 중간에서 우측으로 하나의 지맥을 뻗은 자리에 홍릉이 자리하고 있다.  얼른 보면 청룡백호가 혈장을 잘 감싸주는 모양이나 용호의 끝자락을 보면 벌어져 안쪽의 기운이 그대로 빠져나가는 장소다. 또한 옆 능선에 위치한 순종의 유릉은 땅속 지맥이 머무르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과룡처(過龍處)에 쓰여 져 있다.  홍릉과 유릉은 3.1독립운동과 6.10만세운동에 놀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무덤은 화려하게 조성하였으나 내심 조선의 영원한 패망을 위해 고의로 풍수적 길지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묘소아래의 자연적인 저수지는 생기보호차원에서 매우 좋으나 이 능 아래에는 지당(池塘)이란 인공저수지를 파 놓았고 이것 역시 묘역의 생기가 모두 빠져나가도록 계획적으로 조성한 연못으로 보여 진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