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거리두기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비(非)대면으로 제한하고, 학교 교육과 직장 생활도 디지털 공간에서 행해지는 등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는 아예 계획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작년 4월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이어서 올해 1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의무도 해제되면서 비교적 코로나 이전 생활이 회복된 것 같군요.  덕분에 그동안 중단되었던 정월대보름의 전통적인 행사를 다시 시작한 지방차치단체들이 많아졌습니다. 경주에서도 양동마을을 비롯하여 안강, 건천, 내남, 천북 등지에서 둥실 떠오른 보름달 아래 훨훨 타오르는 달집의 불꽃을 보며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 각자의 소원을 비는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렸습니다.  달집태우기는 나무나 짚을 작은 오두막처럼 쌓아올리고 대보름 둥근 달이 떠오를 때에 맞춰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불을 붙이며 소원을 빌던 전통적 세시 풍속입니다. 달집은 마을 총각들이 산에서 해 온 나무와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온 짚을 무너지지 않게 높이 잘 쌓아서 만들었는데 정월초하루부터 그때까지 날리던 연을 모아서 달집과 함께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정월대보름이 지나고도 연을 날리면 때를 모른다고 흉을 잡히기도 했답니다.  보름달이 뜨면 미리 만든 달집에 불을 붙이고 마을 사람들은 훨훨 타오르는 불 주위를 돌며 농악을 울리고 불이 다 사윌 때까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놀았습니다. 이렇게 하며 액을 쫓고 한해의 복을 불러오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인 양동마을에서도 몇 년 만에 정월대보름 행사가 열렸습니다. 동제(洞祭), 풍물놀이, 지신밟기, 윷놀이, 줄다리기에 이어 저녁에는 마을사람들과 관광객들의 소원지(所願紙)를 빼꼭하게 단 달집태우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도 관광객들 속에 섞여 훨훨 타올라 하늘 향해 높이 올라가는 불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비록 달집에 소원지를 써서 붙이지는 못했지만 달집의 불꽃에 태워 올릴 나의 소원을 더듬는데 문득 프랑스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리베라 메(Liebera me)`라는 레퀴엠이 떠올랐습니다.  레퀴엠은 가톨릭에서 장례미사 때 쓰이던 진혼곡(죽은 이를 위한 미사에서 드리던 노래)으로 그 중 `주여, 그 두려운 날에 저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하소서`로 시작하는 미사곡인 `리베라 메(Liebera me)`는 `나를 구하소서`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아마 달집과 함께 소원을 태워 올리는 다른 이들의 간절한 마음에 동화되어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일었던가 봅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동안 자신이 알면서도 혹은 모르면서 몸과 마음에 덕지덕지 붙여놓았을 세상 풍진(風塵)을 불에 던져 태우고, 타고난 재에서 태어나 날아오르는 피닉스처럼 구원 받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소원이 나의 기도였나 봅니다.  달집뿐만 아니라 촛불이든 모닥불이든 캠프파이어든, 타오르는 불꽃은 대개 사람의 마음을 겸허하게 정화시키는 힘을 지녔나 봅니다.  하늘로 치솟는 화염은 평소 자신이 걸치고 있던 이런저런 껍데기를 불길 속으로 던져서 훨훨 태우고 아무런 가식 없는 발가숭이의 자기를 대면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순간만이라도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욕심과 명리(名利)를 불 속으로 던져 태우고 경건한 마음이 되어 불길이 잦아질 때까지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짖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위에 인용한 시는 백석 시인의 `모닥불`이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하찮은 것이든 훌륭한 것이든 쓸모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모닥불은 가리지 않고 태웁니다. 그렇게 어떤 것이든 불의 질료로 받아 태운 모닥불은 또 불을 쬐는 이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심지어 동물에게조차도 따스함과 불빛을 나누어 누리도록 합니다. 그 모닥불 앞에서 우리는 험하고 아픈 역사를 함께 겪어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합니다.  정월대보름날 타오르는 달집의 불도 마을 사람 누구나에게 골고루 빛과 온기를 전합니다. 행여 지난 해 동안 마을 사람들 사이에 생겼을 수도 있을 갈등도 달집에 얹어 태워버리며 함께 춤추고 즐기는 동안 공동체적 합일을 경험하고 농삿일에 서로 품을 나눌 두레를 만들 무언의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벌써 입춘도 지났습니다. 그저께 본 양지 바른 길턱의 키 작은 봄맞이꽃은 벌써 여린 푸른빛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추위로부터 구원받은 풀과 나무들도 이제 곧 기지개를 켜며 녹색 숨을 토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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