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가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직접적 도화선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도발적 발언이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을 겨냥해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데 베팅하고 있는데,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적인 외교관이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노골적인 내정 간섭이자 협박이다. 외교부가 9일 싱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자 이튿날 중국 정부도 정재호 주중대사를 불러 우려와 불만을 표시했다. 싱 대사의 폭탄 발언이 본국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입지를 위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해당 발언이 이 대표와의 대화 중에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명백히 의도된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반응 역시 싱 대사가 `할 말을 했다`는 분위기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한국 내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앞으로도 확대일로를 걸을지는 미지수다. 구한말 조선 내정에 간섭한 청나라의 위안스카이까지 소환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로 중국이 재차 반격에 나설 수도 있고, 반대로 양국 모두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봉합 수순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는 어떤 경우든 타국의 부당한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처하길 바란다. 동시에 신냉전 시대를 맞아 철저한 국익 관점에서 한반도, 그리고 주변국과의 긴장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으나 중국과 러시아는 마냥 멀리할 수도, 멀리 해서도 안 되는 나라들이다. 당장 경제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훗날 한반도 통일을 위한 주변 정지 차원에서도 일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소비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에 있어 외교는 민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당면한 현안에 슬기롭게 대응하는 한편 그때그때마다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긴 안목의 국가 전략을 놓고 여야가 함께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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