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40기는 되고 신라 왕릉은 안 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 조선왕릉이 세계적 유산이 되면서 국민적 자긍심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지만 신라왕릉의 세계유산 등재가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주는 시조왕 박혁거세가 신라를 건국해 1000년 동안 왕조를 이어가면서 한번도 천도를 하지 않은 도시다. 이 같은 예는 세계에서 경주가 유일하다. 천년 수도를 지켜오기는 중국 시안과 이탈리아 로마가 비슷하지만 그 도시들은 왕조를 바꾸면서 수도를 이어왔다. 신라왕릉은 신라 고고학, 역사 고고학적 맥락 속에서 당연히 신라시조 혁거세 거서간부터 경순왕에 이르는 계보가 엄연히 있다. 봄, 가을 왕릉대제에는 전국에서 후손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그런데 피장자 신원을 확인 할수 없는 가야 고분도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지 않는가. 991년 동안 56명의 왕이 있었던 신라는 역사시대의 한국사 왕조 중 즉위한 왕이 가장 많은 나라다. 약 500여 년 존속한 조선 왕조 27명의 2배를 넘는다. 중대까지 평균 재위 기간은 고구려와 별 차이가 없는 23년이다.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여성 군주가 3명이나 존재했다. 그리고 특정 가문이 왕위, 왕족을 독점하는 게 상식이었던 동아시아 중요 왕조 중에서 특이하게도 박씨, 석씨, 김씨가 번갈아 가면서 왕위를 이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여러모로 동아시아 왕조 중에서는 특이한 부분이 많았던 나라가 신라다. 박 씨 왕조가 232년, 석씨 가문이 172년이다. 경주 김씨 가문은 무려 586년으로 가장 오래 집권했다. 특이한 부분은 박씨 가문이 신라 말기에 왕위를 되찾는다는 것이다. 최장기간 재위한 왕은 혁거세 거서간이 61년이다.   신라왕들의 무덤을 두고 견해를 달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엄연히 존재해 있고 기록이나 비석 등 고증으로 밝혀진 왕들의 무덤도 상당수에 달한다. 신라는 성씨의 뿌리이며 조상을 기리는 한국의 효 사상의 상징이기도 하다. 명당에 자리 잡은 왕릉은 둘레에 자연과 어우러지는 울창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타리를 하고 있어 경이롭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기준인 완전성과 진정성의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해마다 숭덕전과 숭혜전, 숭신전 등 3전에서 시조 왕에게 올리는 춘향대제와 추향대제의 제례문화는 조상숭배사상에 기인하며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형성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에 큰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조선왕릉 40기는 이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벌써 9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조선왕릉이 세계적 유산이 되면서 국민적 자긍심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조선왕릉은 서울지역에 8기, 경기도 일원에 32기가 18개 지역으로 나눠 분포돼 있다. 조선왕릉의 특성은 유교와 동양 전통사상의 조화 속에서 발전해 온 역사적, 정신적 유산이라는 점이다. 조선왕릉 역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늦은 감이 있다. 그뿐인가. 가야고분군이 우여곡절 끝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최종관문을 통과해 등재가 확실시되고 있다. 왕릉의 주인공들은 그 시절 최고의 리더로서 청소년들에게 리더십의 체험 학습장으로 활용해 미래를 향한 교훈과 지혜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신라왕릉에 대한 일부 학자들의 견해가 다를 수도 있지만 원인을 찾아내 조속히 이견일치를 가져와 계보가 엄연한 신라 왕릉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릉을 더 친근하게 국민들에게, 세계인들에게 다가가게 해야 한다. 그 속에 내재된 시대정신과 인간 스토리를 발굴해 재미있고 유익하게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내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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