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녘에 들어선 너른 마당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막 시월에 들어섰음을 일러주는 듯 일행이 도착할 무렵 소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마지막 석양이 찬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그 전날 비가 왔던지 흙으로 된 고택 마당 곳곳에 물웅덩이가 차올랐다. 발뒤꿈치를 들고 마른 흙을 밟으려다 지그재그로 걸어가 멈춘 그 자리에 묵직하게 자리한 축담은 이 집에서 일어난 사백 년간의 네모진 굵은 세월을 켜켜이 누르고 있었다. 축담 위로 올라가 마루청을 바라보니 방이 숱하게 많다. 그날 고택에서 두 명의 나그네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새벽녘, 화장실 갈 일이 생겨 일어나 어둠 속 고택의 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세상, 새벽의 이상루! 거기서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숙소를 마주 보고 있는 이상루의 큰 나무 기둥들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계단을 찾아 더듬거리며 마루에 올라서니 기둥에 큰 북이 달려있다. 그 아래로 수많은 미닫이 격자 문의 창호지 사이로 어슴푸레 푸른 기운이 작은 파장을 이루며 모여든다. 할아버지는 욕지도에서 살다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뭍으로 나왔다. 선대(先代)에 물려받은 땅 한 마지기도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처지였지만 할아버지는 농부로 세상을 살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권력과 위엄의 관리도 되고 싶지 않았다. 다만, 평등한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한 점 덕이라도 쌓기를 바라셨다. 할아버지는 복잡한 송사에 휘말린 사람들의 변호를 맡아 주셨다. 어느 해인가 작은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지낸 적도 있다. 시절이 그러했던지라 그일 또한 보수가 없었지만, 값있는 일은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이후, 사람들은 경남 고성 장날에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면장으로 지내던 할아버지가 뜻밖에도 장날 한 곳 귀퉁이에서 북을 들고 서서 일인극을 하더라는 것이다. 북채를 높이 들었다가 북면을 퉁퉁 칠 때 강하고 약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내며 대사에 흥겨운 추임새도 넣었다. 북소리에 신명이 난 구경꾼들은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들썩들썩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북소리가 일시에 멈추면 할아버지 입에서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왔다. 그 소리를 듣던 구경꾼들은 ‘아이고, 어쩌나!’,‘쯧쯧…. 불쌍도 하지’하며 이야기에 몰입했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전우치전》 일인극이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장날 하늘을 뒤흔들었고 땀으로 범벅이 된 할아버지는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다음 장날에는《이춘풍전》 일인극이 진행되었다. 구경꾼 한 사람이 그 재밌는 이야기는 어디서 알아 오는지 묻자 할아버지는 들고 있던 가방 속에서 한 뭉치 원고지를 꺼내 보였다. 할아버지가 직접 쓴 연극 대본이었다. 한 권의 이야기를 읽고는 각색을 한 다음 모두 외워 장날에 나와 일인극을 해 왔던 것이다.   매번 고성 장날에 우리 고전문학으로 일인극을 공연하다 보니 통영·고성 일대에서 점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북채가 고성 장날마다 신명 나게 북면을 두드릴 때마다 삶이 고단한 사람들은 가슴이 뻥 뚫렸다. 어려운 시절의 북소리가 그렇게 사람들을 위로해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언제 어디서 북 치는 연습을 했을까? 그 북에 관해서는 지금까지도 비밀에 부쳐져 있다. 어디서 난 것인지, 어디서 북 치며 소리 연습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단 한 사람, 선산(先山)에 잠들어있는 당신만이 그 비밀을 풀 수 있으니 영원히 그 북의 비밀은 봉쇄되어 버린 셈이다. 어둠 속에서 북면을 살짝 건드려보았다. 소리는 나지 않고 거칠한 질감만 느껴질 뿐이다. 그때였다. 아마 예닐곱 살쯤이었을까 일인극을 했던 호방한 목소리의 그 할아버지가 어디선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방에서 작은 내 손을 어루만져주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린 나는 할아버지 손이 새벽이슬에 젖은 북면의 그 느낌이었다는걸 이제야 알고 소스라치듯 놀랐다. 아침 햇살이 고택의 문풍지들을 비추자 이상루에 나와 식사하라는 전갈이 왔다. 나는 지난밤, 이상루 북과의 은밀한 만남을 의식한 채 조심스럽게 다시 그 마루에 올라섰다. 간밤, 북의 밀어(密語)는 어느새 아침 해에 건조되어 증발해 버리고 없었다. 어디를 보아도 할아버지의 북 이야기는 없고 이상루 낡은 북은 무미건조한 장식물처럼 기둥에 달려 있을 뿐이다. 지난밤의 일은 꿈이었을까.   숟가락을 들자 동숙인(同宿人)들이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이 곳이 영화 ‘광해’를 촬영한 곳이라는 걸 알려준다. 영화 주연배우가 이곳에서 연기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신기한 표정으로 건물을 훑어보았다. 그 말이 별로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아침 햇살에 비치어 그렇게 투박하던 북면이 속살까지 환히 비치어 순결한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세상에 덕을 쌓기 위해 고성 장날 북과 하나 되어 일인극을 펼쳤던 아름다운 한 남자의 모습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그리움 같은 슬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상루의 북은 지난밤 내게 말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나 자신만의 북소리를 내며 이 세상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할아버지의 삶도 비밀한 가운데 젖은 북면 같은 슬픔을 견디었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내 머릿속에 남겨 놓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안동김씨태장재사(安東金氏 台庄齋舍):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가옥. 1981년 4월 25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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