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아흔을 넘기진 아버님을 뵈러 통영에 내려가서 옛날 우리 본적으로 올라왔던 그 주소에서 아버지가 자랐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장가갈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집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벌써 헐리고 집이 없어졌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땅만이라도 밟아보고 싶어서 친정집을 나서며 고성으로 향했습니다. 주소대로 찾아온 그곳에는 보건소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 집은 없어졌지만, 그 아스팔트 아래 땅은 기억할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그 집에 살면서 고성시장을 다니며 일인극을 했던 그 시절의 수많은 일들을. 바로 그 집 뒤편이 고성시장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고성 장날마다 나가셨던 곳이 그 시장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할아버지의 체취가 시장 바닥에도 묻어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내친김에 선산으로 향해 갔지만 한 번도 혼자 찾아가 본 적이 없는 곳이라 할아버지 묘소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어디메쯤 산일 것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듯 작은 동산을 천천히 돌아오면서 할아버지께 약조 했더랬습니다. 다음에는 문중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꼭 다시 오겠다고요. 수상 소식은 할아버지가 제게 내린 선물인 듯싶습니다.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할아버지, 너는 할아버지 성격을 참 많이 닮았다 하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도 당신은 언제나 저를 지켜주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안동의 고택에서 하루 묵었던 그 밤, 고요가 물갈퀴를 흔들며 어두운 이상루로 저를 인도해 주었던 그 찰나의 순간, 제 눈에 들어왔던 어둠 속 낡은 북으로 인해 얼마나 가슴 벅차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상루의 북을 만지자 언제일지 모를 알 수 없는 어느 과거, 어린 손녀의 손을 만져주는 낡은 북 껍질 같던 한 노인의 얼굴이 떠오르고 저는 할아버지가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의 감동을 잠든 이들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날의 일을 글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을 이상루의 북도 몰랐을 것입니다. 고택 방문을 통해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를 만났으니 이보다 더 큰 행복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이라니요, 얼떨떨합니다. 안동김씨태장재사(安東金氏台庄齋舍)는 경북신문이 이어준 인연입니다. 몇 년 전 행사에 참여했을 때 신문사에서 참가자들에게 숙소를 정해준 장소가 바로 이 고택이었습니다. 그날 경북신문사 사장님께서 글 쓰는 분들을 ‘문사’라 부르시며 앞으로 더 많은 문사가 세상에 필요할 거라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참으로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덕분에 힘이 났습니다.   그렇기에 수상의 영광은 할아버지와 이상루의 북, 그리고 경북신문사 사장님께 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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