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천년왕경 이래 도시 경주에 쌓여온 지층은 어떠할까. 2천여 년 동안 각 세월의 지층마다 누가, 어떻게, 어떤 지문을 경주에 남겼으며 또 어떻게 변화돼왔을까.상전벽해를 이룬 경주의 사라져가는 옛 지문들을 찾아 지역의 7명 집필진이 1년 8개월간의 대장정 끝에 1000페이지에 달하는 대형 출판물 ‘경주인문지리총람 경주의 옛길(경주문화원)’을 발행했다. 경주시와 경주문화원은 지난해 1월부터 7명의 집필진이자 편집위원(이하 직함 생략, 박임관, 오세윤(사진), 조철제, 최민희, 최병섭, 최부식, 최영기, 최재영)을 구성해 경주읍성 중심으로 울산·언양·포항·천북·아화·산내·안강·현곡과 동해방면의 양북·양남 등 모두 9개 방향으로 나눠 대장정의 집필을 시작했다. 2022년 1월부터 8월까지는 집필진 단체 및 개별 답사를 통해 옛길을 따라 경주영역 곳곳을 다니며 경주의 산천과 지문, 선대 경주인의 자취를 기록했다. 모두 사서(史書)·시사(市史) 등의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삼되 그 성격과 맥락의 결은 달리했다. 이로써 경주 역사에 또 하나의 방점을 찍은 것이다. 일종의 경주 근·현대사의 지표라고 해도 손색없는 내용으로, 방식을 달리한 이 책을 발간한 것은 후대에 경주의 자료로서 경주 역사의 일부분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다. ‘경주인문지리총람, 경주의 옛길’은 고대부터 특히,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른 지금까지의 옛길과 새로 난 길을 따라가며 주변 마을의 이야기와 변화를 짚었다. 이 책은 총론을 비롯해 총 3장으로, ‘제1장 경주읍성에서 출발하는 9개 옛길’과 ‘제2장 주제별 경주 이야기’, 제3장 ‘읍성 중심으로 본 경주시가지 공간 변화’로 구성됐다. 또 ‘황리단길’ 등 소주제별 필진(김영제, 박진기, 선애경, 손익영, 이채경, 최무현)에 의뢰한 6개의 소주제도 실었다. 총론에서는 옛길의 바탕인 ‘조선시대 도로정책과 경주의 역참’을 살폈는데, 경주 관련 조선의 6대로(六大路)와 조선통신사가 다닌 사행로(使行路), 역로(驛路), 장수도(長水道) 소속 경주의 역참의 성격 등을 다뤘다. 이는 신경준이 쓴 ‘도로고(道路考)’를 통해 밝히고 현 경주지역 국도의 근간이 되는 일제의 신작로 정책과 경주의 신작로 등을 일본의 도서관에서 찾아낸 ‘朝鮮の 道路’와 1905년 일본인 토목기사가 신작로 개설을 위해 경주-포항, 경주-영천 간 조선시대 옛길을 조사한 조사보고서와 그 경비를 경주군이 조정에 청구한 황성신문 등에서의 자료들을 발굴해 지역에 처음 소개하면서 이 책 발간의 취지와 방향타로 삼았다. 이러한 자료와 해설을 바탕으로, 경주읍성을 중심으로 9개 방면의 옛길을 더듬는 한편, 광복 후 특히 1968년을 기점으로 50여 년간 변화해 온 경주의 근현대 길, 시가지 공간변화와 마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경주시가지의 공간변화는, 근본적으로 1970년대 초반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며 울산의 공업과 포항의 철강산업 지형도에 따른 것으로 파악했다. 천마총 발굴과 보문관광단지 조성, 경주시가지 버스터미널 이동, 시장 이동과 신설, 학교 신설 등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80~90년대를 거쳐 2000년대까지는 고속철도 개통과 전철화, 건포산업도로 등 각종 신설 도로개설이 경주시 곳곳에 산업공단지역, 신주거지역을 낳은 것으로 보았다. 일제가 1912년부터 제작한 근대지도들 중, ‘경주’지도를 비롯해 모량·조양·안강·언양·아화 지도와 경주 외곽의 각 지역 지도를 바탕으로 신작로 방향, 마을들의 이름과 위치 등 경주의 산천을 살폈다. 지도 속에는 조선시대 큰길, 동네길, 샛길, 산길, 고갯마루 등이 나타나 있다. 1914년 ‘지지조서(地志調書)’에선 동네 옛 이름과 인구수를 확인했으며 왕릉과 하천 등을 자세히 그린 ‘지적도’를 통해서는 110년 전의 경주 지형도를 살폈다. 그리고 국토지리정보원 소장의 경주시가지 공간과 각 주요 지역을 담고 있는 항공사진들을 실었다. 이 사진들을 통해 1968년부터 현재까지의 경주시가지와 각 지역의 시공간의 변모를 짐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외에도 지역과 관련된 각종 신문자료들을 발굴해 지역 변화의 맥락을 짚었으며 각 노선과 마을의 주요 대상들이 담긴 2천여 장의 사진을 곁들여 서술의 자료로 삼고 독자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했다. 이런 세세한 노력들이 기존의 경주 관련 각종 사서, 시사 등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대목들이다. 조철제 경주문화원장은 “이 책 발간으로 경주시민들이 향토 사랑을 고양하고 지역 문화를 보호 육성하며 더 높은 자긍심을 갖기를 기대한다”면서 “선대 경주인들이 쌓아온 기억과 흔적, 그 노고의 세월을 모두 담지는 못한 면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향후의 방향과 내용을 예측할 수 없고 맥락만 짚어 한계점 또한 많다. 그릇된 서술, 왜곡된 시선이 있다면 후대가 바로잡아 주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방대한 책에서 ‘역사를 품은 도시, 미래를 담는 경주’를 위해 경주와 경주인이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과 그 길을 찾아낼 수 있다면, 집필진의 그간 노고는 헛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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