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은 6.25 전쟁의 아픔을 가장 많이 간직한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가산면 천평리와 다부리는 전쟁에서 백척간두에 섰던 조국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다부동 전투’의 현장이어서 지금도 그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1950년 8월초. 북한군은 5개 사단 병력을 왜관, 다부동 전선에 집중 투입해 15일까지 대구를 침공할 목적으로 총공세를 펼쳤다. 이때 대구로 향하는 길목을 내주지 않기 위해 국군 제1사단과 제8사단 이 주축이 되고 미 제1기병사단이 가세해 밀고 밀리는 전투가 수십 차례 일어났다. 9월초 북한군은 국군의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마지막 공세를 펼쳤지만 국군의 목숨을 건 반격으로 결국 패퇴했다. 이 전투로 국군은 북한군 1만7500여명을 사살하고 전차 13대를 파괴하는 성과를 올렸으나 국군도 1만여명의 인적 손실을 입었다. 지금도 가산면 천평리와 다부리를 방문하면 치열했던 전투의 기록을 보존한 다부동 전적기념관과 전쟁 당시 가족을 이끌고 산길로 피난을 떠났던 황망한 기억을 간직한 주민들이 남아 있다. 또 전쟁으로 집과 농토를 깡그리 잃어버렸지만 다시 삶의 터전을 일궈낸 주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가산면 천평리는 146가구 24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약 200가구에 600명 이상의 주민이 살았지만 그 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들 주민들의 약 25%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약 50%는 자영업을, 나머지 25%는 직장인이다. 천평리의 주요 작물은 사과다. 이 가운데 3농가는 매우 큰 과수원을 가진 대농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쌈배추 등의 원예농업을 하는 농가도 있다. 1970년대 이전에는 대부분 벼농사에 의존했지만 1970년대부터 과수농사를 시작해 농가소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자영업을 영위하는 주민들은 식당과 상점, 소규모 기업, 임대업 종사자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이 마을은 왜관과 안동, 상주를 잇는 삼거리여서 교통의 요지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가산IC와 다부IC가 가산면 안에 있어 1개 면에 2곳의 고속도로 IC를 보유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곳이다.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으로 천평리는 특이한 교통환경을 이용한 상인들이 다수 이주하기 시작했다. 대구 등 외지에서 삶의 터전을 찾아 이주한 주민들은 약 30세대에 이른다. 천평리는 주민들의 인심이 후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과거 천평리에는 왜관과 안동, 상주로 이어지는 국도를 통행하는 운전기사들이 이용하는 기사식당이 10여 곳이나 성업을 이뤘다. 맛과 인심이 후한 이 마을의 기사식당을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서 1~2시간을 기다리다가 식사를 하고 허기를 달랜 후 떠나는 기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천평리는 왜관읍까지 30분, 대구시 북구까지 20분이 소요되고 구미와 안동은 1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어 주민들은 대구 생활권에 속한다. 병원도 대구의 칙곡 경북대학교 병원을 이용하고 시장도 주로 대구 칠곡시장을 이용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과거 왜관읍까지 도로사ㅣ정이 좋지 않아 약 40분 정도 소요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겨 왜관읍까지의 왕래가 편해진 편이다.김학출(65) 이장은 “천평리는 사통팔달의 교통조건을 깆추고 있어 변화에 민감한 지역이고 물류와 유통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며 “대규모 물류센터가 들어선다면 지역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하고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인구 증가에 큰 역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평리 주민 가운데 다부동 전투 당시 피난길에 나선 기억을 또렷하게 간직한 주민이 있다. 박노이(90) 할아버지다. 그는 “17살 때 전쟁이 발발해 모심기를 끝내놓고 피난을 떠나 그해 수확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거리에 헌병들과 국방군의 주둔지가 차려졌고 가산초등학교는 보급창고였다”며 “인민군이 밀려오자 대구로 향하는 길을 막아버려 주민들은 산길과 골짜기를 찾아 피난길을 떠났다”고 밝혔다. 피난했다가 마을로 돌아와 보니 집과 들판이 모두 불타 폐허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박 할아버지는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주민들이 돌아와 움막을 지어 지내면서 새로 집을 짓고 농토를 다시 개간하면서 어렵게 생활했다”고 설명했다. 권정희 가산면장은 “천평리는 6.25 전쟁의 최후 방어지역이라는 주민들의 자부심이 매우 큰 지역이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자랑스러운 마을이라는 점을 적극 홍보하고 주민들의 삶이 평화롭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특히 지난 여름 수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재난특구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화합과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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