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신문이 영호남 중견작가들을 만나 작가의 성향, 활동 상황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황을 살펴본다.이번에는 묵객으로 전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백옥종 선생을 만나본다.백 선생은 사업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예술활동으로 인류 인간에게 힐링을 선사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백 선생은 평소 예술하는 사람, 특히 서화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덕을 베풀다보니 인격과 넉넉함이 알려진 바 전국에서 많은 묵객과 애호인들이 문방을 찿는다고 했다. ◆ 유년시절 한학자 가문의 혈통 백 선생은 경남 합천 가야산대간의 오도산아래 봉산땅에서 1946년 병술년에 넉넉지 않은 농가의 3남으로 태어났다.1950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세대의 생활상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나라를 재건하는 세대이고 보니 온 세상 사람들이 의식주 해결에 여념이 없었던 시절에 사람들은 태어나 걸음마 정도 할때면 소먹이풀 돼지먹이풀도 뜯어 나르며 집안일을 거덜든 시기이고 형제들이 힘을 다해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덜어 드리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조부님, 증조부님, 고조부님께서 유학자였기에 초등학생 이전부터 형제들은 천자문, 동몽선습 등을 혼정신성(昏定晨省) 드려가며 수학하고 성장하면서 하학 후에도 그러한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한다.19세에 30여리 떨어진 노파리 동노(東魯)서당의 의성 김문 수당(金門 修堂) 선생님 문하에서 칠서(七書)를 마치고 24세 때 군입대해 27세 때 군필하고 약업계로 진출해 영업을 시작했다 한다. ◆ 사업가로 입신양명하다 27세 약업게에 입문해 항상 일인기백(人一己百) 정신을 염두에 두고 줄기차게 근면 성실했고, 과정에서 힘들고 괴로울적엔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자 하는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애기한다.직원 30여명의 회사애 세금 또한 놀라울 정도로 징수되고 있으며 백 선생은 노령에도 보람pharm의 사세를 유연하게 이끌며 업계의 전설이 되고 있다.   ◆ 격물치지(格物致知) 수신위본(修身爲本)의 정신으로 수양을 하다 백 선생은 논어에서 말씀한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즉, 실행 방법은 충(忠)과 서(恕)로서 남을 나처럼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과 같이 생각하는 일이니 이러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초지일관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함을 철저히 하면 일문천오(一聞千悟)의 말과 같이 한번들어 알면 천가지를 깨달음과 같이 서학의 학문은 물리를 터득하려면 경전 한 두권을 외워서 원전이 한글처럼 훤히 보이고 시를 백수이상 외워서 터득하면 여타 시도 보인다고 하니 백 선생이 경전과 한시에 능한 것은 젊은 시절 경서와 시 외우기를 좋아한 영향이라 볼 수 있다.그의 서예에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육조(六朝)체 등이 모두 서풍에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등석여의 논서에 자획밀처(字劃密處)에 불사투풍(不使透風)하니 글자의 빽빽한 곳에는 바람 한 점 통할 수 없게 하고 소처(疏處)에 가이주마(可以走馬)라 성긴 곳에는 가히 말을 달릴만하게하라 했으니 선생의 서예와 문인화 작품이 여기에 협흡됐고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 할만하다.   서법은 소인지예(小人之藝)가 아니라 군자지예(君子之藝)라고 표현하는 것은 서법(書法)이 인격수양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서법은 작가의 학문, 재능과 의지의 총체적인 표현으로 인품을 제일로 치는 것이다.   ◆ 일필휘지의 문인화 세계   최근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사군자, 소나무. 연, 비파, 목단, 목련, 독수리. 까치 등 작품을 보면 다양한 소재와 필력으로 시선을 끌게 한다. 눈에 보이는 사군자와 여러 소재들을 살펴보면 자유 분방한 선생의 마음을 표현하고, 조형의지를 반영한 자유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서예로 다져진 수묵은 먹과 물의 완급을 잘 표현해 농담을 살리고 여백을 살핀 노련한 흔적이 감지된다. 느리게 하면 진하고, 빠르게 운필하면 연하게 되는 필획으로 글을 많이 쓴 필력이라 볼 수 있다.   거의 독학으로 이룬 문인화는 힘이 넘치면서도 부드러운 노 화백의 노련함이 묻어 나오고 원숙함과 여유로움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독창적인 백 선생의 화법은 수묵의 전통성을 살리면서 원숙한 붓 터치와 은은하게 풍기는 농담 의미는 반세기에 흘러간 수행의 결과라 볼 수 있으며 선생의 고결한 인품을 생각나게 한다.   ◆ 작가의 이력과 활동 백옥종 선생은 대구시 수성구 공비락헌에서 서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정암 이원식 선생, 수촌 서경보 선생, 서산 권시환 선생, 구당 여원구 선생을 만나 사사받고 10세에 필을 잡은 지 지금까지 70여 세월이 주마등 같이 흘러갔다. 백 선생은 훌륭한 작가는 성실함과 한결같은 노력에 의해서만이 얻어진다라는 진리를 펼치며, 서당에서 서책을 접하고 지금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후학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개인전은 2012년에 수성아트피아를 시작으로 11번, 초대전, 단체전, 회원전 200회가 넘으며 대한민국 심사위원과 미술인 본상 등 임원 위촉을 100여차례 하는 등 눈코뜰세 없이 분주한 일상, 그 자체였다고 한다. 현재 한국미협 총괄수석 부이시장을 맡고 있으며, 미술대전 등 미술협회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후학에도 많은 도움을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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