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은 656조9천억원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었다. 국가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의 최소 증가 폭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고려하면 감액한 것과 다름없는 수치다. 정부가 초유의 긴축 예산을 편성한 것은 경기 불황 등으로 세입이 급감한 탓이 크다. 더구나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와 지구촌 분쟁으로 글로벌 경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올해 우리나라 국세 수입도 60조원가량 덜 걷히는 `세수 펑크`마저 우려되고 있다. 정부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것은 그만큼 나라 곳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재정건전성 확보와 효율적인 예산 운용이 필요한 만큼 예산안을 심사·의결하는 국회의 역할이 실로 막중해졌다. 시급하지 않거나 꼭 필요하지 않는 지출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경제를 둘러싼 정치 환경이 그렇지 못해서 걱정이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정부의 긴축 기조에 따라 건전 재정에 방점을 찍고 있으나, 예산안 심사 및 처리의 열쇠를 쥔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역화폐 예산 등을 넣어 총지출을 6% 이상 증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천100조원을 넘어선 나랏빚을 들어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여권과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선 오히려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야권의 입장이 맞서는 형국이다. 경제에 대한 관점과 위기 처방이 근본적으로 다른 데서 비롯된 이견이라고 본다. 여야가 서로 견해차를 존중하고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얼마든지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예산심사는 내년 4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열리는 21대 국회의 마지막 심사다. 현역 의원들이 공천과 당선에 혈안이 된 나머지 지역 표심을 염두에 둔 선심성 예산 퍼주기에 나설 가능성이 큰 시점이다. 벌써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구에 도로 건설 등 인프라 사업 예산 확보를 공약으로 내건 의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이 경제 현실을 도외시하고 예전처럼 경쟁적으로 `쪽지 예산` 끼워넣기 등 밀실 담합 행위를 벌인다면 국가 재정을 축내고 민생고를 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 국회에 주어진 책무는 여야 협치를 기반으로 민생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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