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단단히 디뎌야 한다다리를 꼿꼿이 세워야 한다이제부턴아랫도리 힘으로만 버텨야 한다웃통을 벗어 던진 나무들의 결의가뜰 안에 가득하다입동立冬이다. -허영자, `노년의 뜰`   허영자 대 선배 시인께서 `허영자 시선집`(동학사)을 출간했다. `가슴엔 듯 눈 엔 듯` 첫 시집 이후 11권의 시집에서 뽑은 주옥같은 명시들이 실렸다. 한국 서정시의 맥을 잇는 아름다운 시들의 축제를 보는 것 같다. 눈이 부시게 감동적이다.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시를 쓰며 살아야 한다`는 운명을 느꼈다면서 먼 곳에 있을 영혼에게 부끄러운 이 글을 드린다고 겸손의 눈빛을 보낸다.   시는 `서정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시에 대한 이 명답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이 아마 허영자 시인의 작품들이 아닐까? 모든 시인은 진솔하고 윤기 있는 한편의 서정시를 갈구한다. 진실한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의 세계, 평생을 시에 바친 전력투구한 시인의 영혼의 목소리다.   시인은 80 노년을 지나면서 `노년의 뜰`이라는 연작시를 수십편 보인다. 시 `입동`은, 설명할 필요도 없는, 전혀 난해하지 않는 시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쓸쓸해지는 노년의 삶을 비유하며 잔잔한 비애를 노래한다. `발을 단단히 디뎌야 하고/ 다리를 꼿꼿이 세워야 하고/ 아랫도리 힘으로만 버텨야한다` 걸을 수 있어야 산 송장이 안 된다. 걸을 수 없으면 죽음이다. 파도처럼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웃통을 벗어 던진 나무들의 결의가 뜰 안에 가득하다/ 입동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시는 그 시인의 자서전이자 반성문이다. `노년의 뜰`에서 노래한 `노쇠`란 다른 작품을 보자. `노쇠는 병이 아닙니다/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노쇠는 병이 아니니 나을 수가 없다는 말씀/노쇠는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약이라는 말씀`   노쇠는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약이다! 여기서 독자는 무릎을 친다! 우리 삶은 결국, 당신과 나, 아득한 참고 견딤의 세월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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