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가을-하늘은 파랗고 들녘엔 추수를 기다리는 풍요로운 들판은 황금 물결이 출렁이어 가관스러움을 느낀다. 필자는 46년간 교육계 종사하면서 생각에도 없던 칠순이 막 넘긴 제자로부터 전화와 함께 다정하고 곱게 쓴 손편지를 받았다. 뜻밖의 일이라 가슴이 뭉클했다.   카나다에 살고 있다는 ‘정선아’는 50여 년 전에 어려웠던 가정 형편상 만학을 했던 간호사이다. 인정이 넘치는 전화도 충격스럽지만 잊지 않고 기억해준 알뜰한 정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 간간히 그때 동기생으로부터 먼 안부는 간혹 들었지만 살아온 내력을 책자로 만들어 보내 준 고마운 성의의 마음에 흡족함을 느꼈다. 그동안 한국을 떠나 먼 곳으로 이민을 떠난 사연과 지금의 형편을 역력히 적은 편지는 필자의 교육 생활에서 드문 일이다. 친정인 울산에 가면 찾아 뵙겠다는 정감에 큰 소원을 이룬 듯 며칠을 두고 가슴이 설레이었다.동봉한 책자의 내용은 간호학을 공부한 연유로, ‘퇴행성 질환-파킨슨 질병 투병과 병상 일기’라는 전문서적이다. 필자는 그 책의 내용은 전혀 무지이지만 우선 보기에 표지의 그림이 참 아름답다. 유아적이면서도 청운의 꿈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을 필자가 가르쳐준 신앙을 따라 용케도 견디어 내었고 지금껏 살아온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리며 살고 있다고 한다. 대구보건대학 졸업과 간호사 국가고시와 양호교사 자격취득과 간호장교로 임관되어 파월 간호장교(중위)를 거쳐 1976년에 독일 ‘마린크란켄하우스’ 병원에 근무했다고 한다. 그 후 부산 대연여상에서 교련 및 양호교사로 있은 후 카나다로 이민을 갔다는 것이다. 편지는 상대편에게 전하고 싶은 일 등을 적어 보내는 일을 글(글자)로 서신·서간이며 종이에 적은 대화이다. 편지의 내용에는 인간사의 희노애락인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담겨있는 간절함이 가슴 속에 잠기는 사연들이 많다. 가까운 사이라도 보내기 보다는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주로 소식으로 안부 따위에 대한 기별이나 편지가 주역이다. 기쁨이나 추억 등 요즈음의 형편인 근황을 묻는 일에 쓰이며 급한 용무가 아닌 사연이나 그리운 과거 얘기인 사랑과 추억담이 많은 글이다.편지는 받았을 때는 희망,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추억과 그리움 그리고 아쉬움, 그리고 마음이 머리를 이끌어가면, 편지는 잘 써진다고 한다. 편지는 소식과 지식의 전달자. 상업과 산업의 매개자. 매개자는 사이에 끼어들어 서로의 관계를 맺어주는 자요, 전파하는 자라 한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도 편지 한 장은 영원한 그리움의 동반자라 한다. 시인 박목월의 ‘젊은이들을 위한 편지’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저 자신 몽롱한 감정세계를 고독한 자리에서 깊이 반성하고 재확인하며 확충시키고 세련 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말로써만 주고 받거나 분위기로써만 맺어진 우정이나 사랑과, 편지를 통하여 성숙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정과 사랑이 맺어준 것이 한결 질기고 정련(잘 단련함)된 것임은 물론이라”했다.   영문학자 여석기 교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으나, 사람 내 남할 것 없이 오고 가는 정이 뜸하면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 정(情-마음의 움직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편지라 한다. 현대인들과 학생들이 많이 쓰는 일기와 편지의 차이점이 있다면, 일기는 그날 그날 겪은 일이나 감상 등을 적은 개인의 기록이지만, 편지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사건을 남에게 알리는 것이다. 일기를 일인칭의 글이라면, 편지는 이인칭의 글이다. 그리고 일기가, ‘고백의 글’이라고 한다면, 편지는 어떤 대상을 자기에게로, ‘부르는 글’이라 한다. 다산 정약용의 글에, 귀양살이 타향에서 고향 생각 끝이 없어/객창(나그네 방) 한 등(겨울밤 쓸쓸하게 비치는 등불) 잠 못 이뤄 외로이 앉았더니/ 첫 닭이 홰 (새벽에 우는 닭 소리)를 외치며 새벽 소식 알릴 무렵/ 집에서 보낸 편지 내 손으로 뜯어보네/ 이 어찌 상쾌치 않을 소냐./다산의 편지엔 반가움과 기다림이 잘 묘사되었고, 더욱 특이한 사연은 폭스 트로트로 오랜 세월 속에서도 아직껏 애창되는 노래 ‘향기 품은 군사우편’이다. 한 님을 반기는 노래로,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에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편지에/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가서/ 복 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편지는 가까운 이에게 힘을 주는 활력소다. 아무리 미운 자라도 편지 한 장에 화해가 되고 용서가 되는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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