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나눌수록 커지는 게 기쁨이다. 슬픔역시 그 고통을 가까운 사람과 나눌수록 줄어든다고 했던가. 그래 예로부터 인정 많은 조상들은 이웃 및 친척 애경사 때 마음을 다하여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여도 애경사 때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자랑스레 여기기도 했다. 정치인 및 사회 지도자층의 애경사인 경우, 사람이 구름처럼 떼 지어 몰려오는 것을 두고 덕망 및 권력의 표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 때 권력의 후광을 입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 애경사 장소에 나타나 눈도장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심사로 찾는 이들도 있었으니…. 영달을 위한 행동이어서인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자리에서 부조금도 이해타산에 얽혀 내기도 했다. 요즘도 이해득실에 의한 눈 저울질 눈금을 그득 채우는 게 이것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 성 싶으면 기꺼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 십 여 년 전 자신은 상대로부터 받은 게 있어도 외면하기 일쑤다. 필자역시 미혼인 세 딸 중 둘째 딸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보내려 하나 망설여진다.   필자 연령대에 이르면 장성한 자녀들을 일찍 결혼을 시킨 지인 및 친구들도 많다. 어느 날 그동안 많은 문우 출판 기념회 및 주위 사람들 애경사 때 보낸 부조금을 정리해 보고 적잖이 놀랐다. 지난 수 십 년간 애경사 때 부조금으로 지출한 돈이 꽤 많아서다. 심지어 어느 지인이나 문우에겐 한 사람 당 서, 너 번 애경사 때마다 꼬박 꼬박 봉투를 하곤 했다. 그러나 몇 십 년 전 해 온 일이 다수다. 저울로 단 듯이 주고받는 게 부조금 특성이지만 세월 속에 흐릿해진 상대방 기억을 소환하기엔 그간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요즘은 봉투에 ‘경축慶祝’,‘결혼을 축하 합니다.’ 혹은‘조의弔意’,‘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봉투에 직접 써서 애경사 때 부조금으로 보내는 일은 흔치 않다. 언제부터인가 결혼 청첩장이나 부고장에도 부조금을 내려는 사람을 배려한 은행 계좌 번호가 떡하니 등장해서다. 처음엔 이것들을 받아들을 때마다 마치 상대방에게 부조금을 강요받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19 창궐 후 사회적 거리가 강조 될 때는 오히려 청첩장이나 부고장에 상대방 은행 계좌 번호를 적어 보내주는 게 반가웠다. 이제는 이 일이 보편화돼서인지 나 역시 개인 은행 계좌 번호를 딸아이 모바일 청첩장에 명기 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봉투에 돈을 넣어 부조하는 일을 선호한다. 공식석상에 초대되어 참석할 때는 현장에서 주최자에게 봉투를 건네곤 한다. 일명 협찬금이라면 지나칠까? 계좌 이체로 정성을 표하기 보다는 지폐로 마음을 건네는 게 더 예의상 맞을 성 싶어서다. 이런 의미에서인지 어디선가 초대를 해오면 꼭 금일봉을 건네는 것을 습관화 하고 있다. 어느 단체 행사에선 아예 참석자들에게 점심 값을 지참하고 참석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한다. 이런 문구를 대할 때마다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 그야말로 속된 말로‘내 돈 내고 내 닭 잡아먹는 꼴’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세태이련만 이즈막에도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할 땐 봉투 속에 정성을 한껏 봉하여 전하는 것을 즐긴다. 이렇듯 한낱 종이로 만든 물건에 불과한 봉투지만 그것이 해내는 역할은 자못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봉투가 때론 어둠 속에서 저지르는 음습한 비리에 활용되고도 있어 안타깝다. 정치인들의 ‘돈 봉투 사건’이 그렇잖은가. ‘봉투’하면 애경사 때, 혹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담아 전하는 매개체로만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 이뿐이랴. 학창 시절 연애편지를 받았을 때 흰 봉투에 눌러쓴 남학생 주소를 대하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또 있다. 어린 날 집안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한껏 지켜줬던 월급봉투였다. 그 때 월급 봉투는 아버지가 지닌 유일한 권위적 상징이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월급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월급날은 모처럼 우리 형제들이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자장면을 배불리 먹는 날이기도 해서다. 상의 속주머니에서 누런 월급봉투를 꺼내어 어머니께 건네는 순간엔, 한껏 큰 소리로 헛기침까지 하던 아버지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당시 아버지 헛기침은 의미가 깊은 듯하다. 월급봉투를 어머니한테 건네며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애쓴 당신의 노고를 아내로부터 높이 치하 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지 싶어서다. 예전에 비하여 이즈막 가정에서 남자들이 기를 못 피는 것은 월급봉투를 몽땅 아내에게 빼앗겨서라면 여성들에게 몰매 맞으려나. 월급이 고스란히 아내 계좌로 이체되잖은가. 이 때문에 지난날 아버지처럼 헛기침으로나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운조차 잃은 남편들인 듯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을 매우 좋아한다. 옛 것을 지키고 새것을 익히는 삶은 우리 민족정신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 정신에 의하여 딱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정의 매개체인 봉투를 새해엔 가슴으로 마련해 볼까보다. 해마다 년 말이면 익명으로 거액이 든 봉투를 자선냄비나 주민 센터에 맡겨오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훈훈한 미담은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 따끈한 전기장판 같은 역할을 해주고도 남음 있잖은가. 세상은 각박하지만 아직도 변함없는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렇듯 타인에게 내 것을 덥석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은 자손대대 만복을 받는 게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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