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고개 숙인 성자처럼 저녁놀에 물든 황금빛 억새가 일렁이던 늦가을이 떠올랐다. 익어 고개 숙인다는 것, 남아있는 길을 걸어가면서 존엄한 생존에 대한 가치를 알아간다는 것, 그것은 익어감이 무엇인가를 터득하는 일일 것이다.   시들어 쭉정이만 남은 껍질을 보면서 생명을 품었던 씨앗과, 우주와 함께 만찬을 즐겼던 허망과 허무, 장엄했던 시간들을 가슴에 품고,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남아 있는 발걸음 더 풍성하도록, 손에 쥐고 있는 티끌까지 놓아버리고, 세상에 없는 위안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어느 시인은 꽃 예찬을 몹시 싫어한다고 한다. 꽃은 피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열매를 얻기 위해, 씨앗을 맺기 위해, 장렬한 몸짓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꽃. 활짝 핀 아름다운 꽃잎에 스며있는 장렬한 소멸.   꽃은 죽어 씨앗을 남기고 그 씨앗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미래가 된다. 화려한 몸짓으로 찬란하게 피어났다, 씨를 뿌리고 떨어진 꽃의 장례행렬. 지상으로 뛰어내리고 있는 어미들만이 할 수 있는 내일을 여는 죽음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후략- -이육사, 「黃昏」 부문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검은 씨앗 한 점이 황금빛 저녁놀에 숨죽이며 고요하게 싹틔울 준비를 하듯 “바다의 흰 갈매기” 또한 “외로운” 사람에게 포근함을 베풀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온다.   불타는 황금빛 저녁놀에 물든 검은 씨앗 한 점, “골방”에서 “커-튼을 걷고” 외부공간으로 시선을 옮기는 행위는 씨앗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미래가 되듯 병을 이겨내고 우주적 성찰을 내면에 가득 채우려는 긍정적인 태도로 “걷”음이다. 경이로운 씨앗 하나. 화려한 몸짓으로 찬란하게 피어나기 위한 첫걸음, 그것은 탄생이다.   “흰 갈매기”는 외로움이지만 이 외로움은 황금빛 저녁놀에 의해 아늑함을 안겨준다.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는 외로움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편안하고 행복감을 주는 존재인 저녁놀을 맞아들이겠다는 의지이다.   때문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황혼과 화자가 일치되어 세상 품에 안긴 모든 외로운 존재들과 함께 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뜨거운 입술”은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회생시키는 힘이 된다.   지상으로 뛰어내리고 있는 어미들만이 할 수 있는 내일을 여는 죽음은 “뜨거운 입술”이다. 씨를 뿌리고 떨어진 꽃의 장례행렬이지만 황혼에 의해 위안되고 어루만져지고 달래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외로움 속에서도 표현할 수 없는 이 기쁨은 기적처럼 아직 살아있는 일이다. 아련한 달빛과 별빛에 스며들어 지그시 눈을 감고 우주를 향해 감각기관을 열어 우주에너지를 받아들여본다. 숲과 벌판을 어루만지는 수많은 열매들,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까만 점인 씨앗들, 말라비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은 봄 되면 찬란한 세상을 열어갈 것이다.   가을은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어오고, 겨울은 씨앗들이 거룩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공간을 만든다.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완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경이로운 세상, 모든 씨앗들에게 겨울밤이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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