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소한 일에도 왠지 버겁다. 이렇듯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일 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럼에도 막상 집을 나서서 목적지에 이르면 꿈꿔왔던 여행지에 대한 환상이 희석되곤 한다. 텔레비전 영상이나 아님 사진으로 보아왔던 수려한 풍광이 아니어 서다. 한 때는 필자도 가을철만 돌아오면 단풍 구경 위해 길을 나서곤 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철엔 가까운 산이라도 찾아갈 꿈에 가슴이 부풀곤 하였다. 필자 같은 경우 그것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여행지를 찾아가기까지 그 과정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여행을 며칠 앞두고 밤잠을 설치기 예사였다. 학창 시절엔 혼자 배낭을 메고 전국을 헤맨 적도 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조차 경이롭던 시절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젠 낯선 곳을 찾으면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설레임에 가슴이 마구 뛴다. 국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 홀로 1인용 텐트를 싸들고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를 찾았었다. 넓은 백사장을 갖춘 바둑알 같은 돌이 무수히 깔린 콩돌 해수욕장이었다. 이곳에 텐트를 치고 9박 10일 혼자 지냈던 추억은 아직도 그곳 바닷가가 들려주던 해조음이 가슴에 남아있을 정도다. 젊은 날에 찾았던 백령도는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지만 삶에 쫓겨 여태 그곳을 향해 두 번 다시 발을 내디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런 필자에 비하여 이상문 오지 탐험가는 참으로 여행담이 남다르다. 그는 오로지 오지만 찾아다녔잖은가. 특히 「목발로 넘은 데칸 고원」이라는 부제가 적힌 그가 지은 『인도에 관한 열 일곱가지 루머』라는 책은 매우 인상 깊다. 그동안 나태했던 필자였음을 새삼 깨우치기에 충분한 내용들이 다수여서다. 특히 저자 해적이를 면밀히 살펴 본 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장애를 지녀 목발을 짚었다. 책 발간 당시 울산제일일보 취재 1부장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대학 시절부터 오지 여행을 시작해 그간 50여 개국을 여행한 전력이 있다. 요즘은 ‘경북신문’ 편집국장 자리에 오른 그다. 솔직히 육신이 멀쩡한 필자도 해외여행을 꼽으라고 한다면 고작 이탈리아, 일본, 중국, 베트남이 전부다. 여태껏 다녀온 외국 여행지가 몇 군데 안 되는 이유는, “살기 바빠서” 라는 궁색한 변명을 댈 수밖에 없다.   이런 필자에 반하여 이상문은 남달랐다. 장애를 지닌 몸이지만 마음으론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보다 더 가벼운 날개를 얻었지 싶다. 그는 남다른 굳은 의지로 목발을 힘겹게 짚고 무려 50여 개국을 넘나들었잖은가. 그는 이 책속에서 지난날 10여 차례 다녀온 인도를 또다시 여행하길 갈망하기까지 하였다.   이 책에서 가장 감회 깊은 내용은 「게이트 오브 인디아」이다. 인간은 삶을 살면서 위기에 봉착할 때가 있다. 요즘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어쩌면 매순간마다 찾아오는 게 위기일지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으리만치 바람 앞에 등불 같은 형국 아니던가. 잘 나가던 중소기업 사장이 하루 아침에 빚더미에 앉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점심밥을 해결하던 일명 맛 집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이다. 오죽하면 구제 금융사태 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까? 서민들은 이제 빈 지갑조차 열을 힘마저 잃은 듯하다.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는 삶의 시름 속에 이즈막 읽게 된 이 책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안겨준다. 아울러 저자 이상문이 지난 시간 겪었을 고단한 삶에 연민마저 일게 하는 이 책 속 ‘게이트 오브 인디아’ 내용이다.   언론인이 되기 이전, 그가 젊은 날 공직에 재직할 때 일이다. 타인의 어려움을 위한 빚보증은 그를 끝내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을 옥죄어 오는 현실을 탈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돌파구로 선택한 곳이 인도였나 보다. 어렵사리 인도 여행지인 뭄바이에 도착한 그였다. 도착하고 보니 인도 관문이라 할 그곳 공항의 허술함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화장실서 풍겨오는 악취뿐만 아니라 공항에 나와서 입국하는 친지를 기다리는 많은 인도인 행색은 초라하고 남루하기 그지없었다. 택시를 타고 뭄바이 시내로 향할 때 목격했던 빈민인들 생활상 역시 잊을 수 없단다. 루핑 자락으로 어설프게 얹은 천막 지붕, 그 앞마당엔 더러운 그릇으로 끼니를 만들고 있는 여인네와, 곁에 발가벗은 엉덩이로 맨땅에 주저앉아 아무 것이나 주워 먹는 아이들이 눈물겨워 보였다고 했다. 반면 문명의 빛이 휘황한 시내로 들어서자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종전에 보아온 비참한 빈민가와는 대조적으로 영양 과잉에 의한 살찐 사람들 모습 때문이었다. 번쩍이는 황금 장신구로 치장한 인도인들 모습도 그러했다. 이 들을 대한 후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지닌 선명한 삶의 보색 대비에 경미한 어지럼증마저 느꼈다고 표현했다. 어느 국가든 그늘은 존재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잖은가. 올 겨울 당장 쪽방 촌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독거노인들 안위가 걱정이다. 또한 겨울철이면 더욱 그 숫자가 늘어나 는 노숙자들 아니던가. 차디찬 지하도 맨바닥에서 노숙하는 그들을 떠올리노라니 빈자貧者들의 비참한 삶은 외국이나 우리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이에 온몸에 한기마저 돌아 이 겨울이 더욱 춥게만 느껴진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