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왔다. 집 앞 놀이터에 서 있는 나무 가지들이 마치 살점 한 점 없이 발라진 생선뼈처럼 느껴졌다. 겨울철 싸늘한 하늘 위로 앙상한 가지만 뻗어 있다. 나목이 된 이 나무들을 자세히 보아하니 살벌한 세상에 내버려져 추위에 떨고 있는 듯 서글픈 자태이다. 지금의 내 모습과 많이 닮았다. 계속 길을 걷노라니 문득 지난날 나의 전성기 때 모습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늘 희망을 품고 살아왔던 한 때가 있었다. 그때는 어떤 일에 별반 두려움도, 겁도 없었던 것 같다.   이는 아마도 내가 노력 한만큼 반드시 꿈은 이루어 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적 우연히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들었을 때다. 그 음악을 듣노라니 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곤 그곳에서 연주 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 상상은 나의 취미가 될 정도로 내 삶속에 익숙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 모습을 눈앞에 그리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 나의 모습은 현재 진행형이 아닌 상태다. 내가 살아온 모든 기억들을 앨범에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는 듯하다. 오롯이 추억 속에 일시정지 된 채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가끔은 이런 내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더욱 이런 심정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은 내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맞이하게 해준 음악이다. 하지만 나의 음악 인생을 마치게 해 준 음악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비창은 나에게 있어 의미가 깊다. 지난 7년 동안 몸담았던 교향악단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단원 생활을 정리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주 했던 음악이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이어서 더욱 그렇다. 나는 그 연주를 하면서 직감 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정리 할 거라는 것을…. 그래서 그 음악을 연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화려한 선율과 우수에 젖은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다. 이 곡을 작곡했을 때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차이코프스키는 우울증과 동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끝으로 차이코프스키는 생을 마감 하였고 생을 마감한 이유는 한때 소련의 고위급 간부의 조카를 사랑하게 되어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위급 간부는 이 내용을 편지로 써서 황제에게 전달, 고자질 하려 했다. 그런데 그 편지를 당시 차이코프스키가 다니고 있던 법률 학교 동기생이 대신 전하게 되었다. 그 동기생이 편지를 황제에게 전달하기 전에 내용을 읽어 보았고 같은 법률학교 동기생들과 이 상황에 대해 모의를 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가 법망에 걸려서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일로 차이코프스키에게 벌을 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차이코프스키는 스스로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당시엔 무성 했다고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 때문인지 이 곡이 더욱 슬프게 들린다. 사람은 때론 자신에게 닥쳐올 시련을 예감 하곤 한다. 나 역시도 이 곡을 연주 하면서 나에게 닥쳐올 시련을 예견 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몸담아 왔었던 교향악단 단원 생활을 정리 하고 나서 후회를 많이 했다. 왜냐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교향악단을 그만 둔 후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 일을 다시 하고 싶어서 다른 곳에 오디션 공고가 나는 곳마다 거의 빠짐없이 지원했었다. 하지만 매번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럴 때 마다 난 세상을 비난하고 탓했다. 세상이 불공평하여 음악에 재능 있는 나를 외면 한 채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나의 오만 이자, 겸손하지 못한 자세였다.   나의 음악적 재능만 믿지 말고 더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해야 했다. 이젠 내 자신이 버림 받지 않을 만큼 높은 자존감과 누구도 따라 오지 못할 높은 연주 실력으로 내공을 쌓아 세상에 맞서서 음악을 향한 나의 이 갈급함을 이겨낼까 한다. 이젠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삶에 지친 소외 계층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들려주련다. 그들이 내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어 새해엔 메마른 마음자락이 윤기를 얻는다면 한결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라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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