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겪은 일은 평생 삶의 일부를 오롯이 지배하기도 한다. 그래 헌트(HUNT(1961- )는 자신의 저서 『지능과 경험』에서 아동의 초기 경험을 적절히 제공하면 IQ를 상당한 수준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나 보다.   또 권대훈은 자신의 저서 『교육 심리학의 이론과 실제 p59』에서 아동은 보고 듣고 느낀 외부 지식을 모사模寫및 기억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인지구조(지식)를 구성하는 능동적 존재라고 밝혔다. 요즘 따라 필자는 그의 이 언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는 어린 날 주어진 환경에 의하여 필자의 인지구조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인가 보다. 어려선 성향이 무척 쾌활하고 활달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이다 보니 자연 동적動的인 놀이를 좋아한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잠시 시골에서 살 때의 일이다. 동장군이 찾아오는 겨울철이면 어머니 몰래 썰매를 갖고 나가 논바닥에서 탔다. 그 당시 또래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 소꿉놀이를 흔히 했다. 하지만 필자는 겨울철만 돌아오면 썰매 타는 일에 더욱 열중했었다.   이즈막 나이 탓이런가. 지난 어린 시절 일들이 마냥 그립다. 무엇보다 어린 날 추억을 소환하게 하는 한 편의 글을 읽으니 더욱 그 기억이 또렷해진다. 정관영 수필가의 수필집 『그루터기의 꿈』에 수록된 수필 「눈썰매장의 추억」이 그것이다. 이글 서두에서 작가는 겨울 방학이면 으레 아침에 나가 마을 어귀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논에서 하루종일 썰매를 타곤 하였다고 회상한다. 썰매를 타다가 지치면 논두렁에 장작불을 지펴서 고구마, 밤 등을 구워 먹었다고도 했다. 필자 역시 같은 경험을 했다.   또래 사내아이들과 누가 제일 멀리 잘 달리는지 얼음판에서 썰매타기 경쟁을 벌였다. 이 놀이도 지치면 눈싸움을 벌이곤 했었다. 그리곤 논바닥에 장작불을 피우고 젖은 양말이며 장갑을 말리다가 불에 태운 적도 많았다. 이런 놀이에 흠뻑 빠지다 보니 공부는 뒷전이었다. 하지만 어머닌 단 한번도 꾸중을 하거나 공부 안 한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그야말로 겨울철이면 필자가 살던 동네 앞 얼음판 논바닥은 아이들의 놀이터나 진배없었다. 어디 이뿐이랴. 산과 들이 전부 아이들 놀이터였다. 겨울이면 논바닥에서 해지는 줄 모르고 얼음을 지쳤다. 봄이면 뒷동산에 올라가 진달래를 꺾으며 뛰어놀곤 했었다. 그때 봄꽃 위로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어린 눈에도 참으로 신기했다. ‘노랑나비, 호랑나비 등의 날개가 어쩌면 그 색깔이 꽃처럼 고울까?’ 라는 생각에 날개를 팔랑이며 허공을 날아오르는 나비들을 뒤쫓아 하염없이 산길로 접어들다가 길을 잃은 적도 있다. 여름철엔 마을 앞 시냇가에서 온종일 멱을 감으며 아이들과 다슬기도 잡고 송사리도 잡았다. 자연 속에서 뛰어놀았던 그 기억들은 요즘도 가슴이 바짝 메마를 때마다 습윤濕潤을 안겨주곤 한다. 이로 보아 어린 시절은 어떤 물리적 환경에 의하여 좋은 경험이 축적된다면 그것이 한 인간의 성격 형성까지 돕는 듯하다. 필자가 이 나이에도 유독 정이 많고 감성이 풍부한 게 어린 날 자연의 품 안에 안겨서 자란 덕분이 아닐까 하는 진단을 나름대로 해 본다.   반면 어린 날을 떠올리게 하는 정관영 작가 수필 「눈썰매장의 추억」을 읽노라니 현대에 사는 어린이들이 왠지 안쓰럽다. 유치원 때부터 조기 교육 열풍에 떠밀려서 영어 학원 및 발레 학원 등을 순례하느라 마음껏 친구들과 뛰어놀 시간조차 없잖은가. 이런 형국이다 보니 마을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모습을 눈 씻고 찾아 볼래야 볼 수가 없다.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선 사라지는 놀이터에 관한 내용이 방영됐다. 비싼 비용으로 마련한 멀쩡한 놀이터 시설이 무참히 허물어져 나가는 광경을 바라보노라니 새삼 인구 절벽에 대한 위기마저 실감했다. 한편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결혼을 한다 하여도 아이를 낳아 마음 놓고 키울 형편이 안 돼 아기를 낳지 못하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집값 전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결혼도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오늘날 아니던가.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사회성과 창의력 등을 배양하기도 한다. 빛나는 태양 아래 ‘까르르 까르르’ 밝게 웃으며 맘껏 뛰어노는 어린이 모습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가. 어찌 보면 이렇게 활발하게 놀이터에서 뛰어놀며 친구들과 우정을 쌓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일 역시 학교 공부 못지않게 어린이에겐 소중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교육의 백년대계百年大計는 어린이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부터 개선되고, 조성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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