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나라에 조상(曹商)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됐다. 그런데 진나라로 떠날 때 고작 몇 대의 수레에 불과했지만 진나라를 다녀올 때 100대의 수레가 불어났다. 조상이 진나라의 임금을 만나니 매우 반기며 수레 100대를 더 붙여 줬다는 것이다. 조상은 송나라로 돌아와 장자를 만났다. 그리고 수레가 100대 늘어난 사실에 대해 자랑했다. 조상은 장자에게 “비좁고 누추한 빈민굴에 살면서 구차하게 신이나 삼고, 비쩍 마른 목덜미를 하고 두통 때문에 얼굴빛마저 누런 것은 내가 부족한 탓이었네. 그보다는 진나라의 임금을 깨우쳐 100대의 수레를 얻는 것이 나의 장기였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장자는 “진나라의 임금이 병이 나서 의사를 불렀을 때 종기를 째고 고름을 빠는 자에게는 수레 한 대를 줬고, 치질을 핥아서 고치는 자에게는 수레 다섯 대를 줬다네. 따라서 치료하는 하는 곳이 더러울수록 받는 수레의 숫자가 많았다는 뜻인데 자네는 어떻게 그 치질을 빨았기에 그리 많은 수레를 얻었는가? 더럽네. 자네는 내 앞에서 빨리 사라지게”라고 대답했다. ‘장자’의 ‘열어구’에 나오는 우화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 우화의 이야기가 만든 ‘지치득거(舐痔得車)’라는 사자성어를 쓰고 있다.   지난해 교수신문에서는 2023년의 사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꼽았다. 이익을 보고는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지난해 우리 정치인들을 두고 통렬하게 꾸짖은 셈이다. 입만 떼면 서민, 민생, 안보, 경제라 떠벌리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셈법으로 따지고 들어서는 명분과 대의를 까마득하게 잊고 오로지 이익만 좇는 현실을 적확하게 지적했다. 시민들과 만나서 눈물까지 내비치며 그들의 아픔을 모두 품어주고 해결해줄 듯이 말해놓고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당론이 시민의 뜻과 어긋날 때는 과감하게 그 사실을 잊고 딴소리를 해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엉뚱한 태도를 견지할 때는 마치 논밭두렁에서 자다 깬 콩새의 모색이다. ‘견리망의’라는 말의 반대개념으로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말이 있다. 이로움을 앞에 두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익이 코앞에 닥쳤을 때 그 이익이 과연 합당하고 의로운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이 말은 과연 군자들만 따를 말인가. 모두가 이 사자성어대로만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롭고 고즈넉할 것인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견리망의’보다 더 혹독한 비판의 말이 ‘지치득거’다. 한 진보사학자는 지난해의 사자성어인 ‘견리망의’를 얘기하다가 그것보다 ‘지치득거’가 더 적합한 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단순하게 ‘의로움을 잊는’ 행위보다 더 많은 수레를 얻기 위해 품격과 자존을 팔아버리는 ‘지치득거’가 지난해 우리 정치현실에 더 어울린다는 말을 한 것이다. 무엇이 의로움인지, 무엇이 공익을 위하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인지 잠시 되돌아보지도 않고 오로지 윗사람에게 아첨하고 빌붙어 이익을 얻는 자의 비열함과 천박함을 빗댄 이 사자성어를 꺼낸 그 사학자의 분노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지치득거’의 한자 뜻을 일일이 들어 설명하자면 지저분하다. 그만큼 지난해 우리 정치인들은 입에 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천하고 경박했다. 올해는 그 분위기가 한결 더 심화될 듯하다. 4월에 열리는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위한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수 싸움은 곁에서 지켜보기 민망할 정도로 치졸하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정치적 도의는 뒷전이고 오로지 자신의 금배지만 중요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치의 현실이다. 실제로 공천권을 쥐고 있는 막강한 세력에 빌붙어 그 세도가가 지닌 잘못에 대해 바른말 하기는커녕 ‘지치(舐痔)’하기에 바쁜 정치인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도 될지 한숨만 나온다. 4월 총선에 등장하는 인물의 면면을 샅샅이 살펴야 한다. 덮어놓고 지지 정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거나 크고 작은 인연에 휩쓸리거나 동정과 연민으로 표를 몰아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경제 위기의 늪에 깊이 빠져 있고 안보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세계인들이 우러러보던 대한민국의 국격은 땅에 떨어졌고 미래는 한 치 앞도 확신할 수 없는 모호성의 시대에 도래했다. 정치가 사회를 완전히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정치를 주도하는 정치인이 가져야 할 막중한 책무라는 것이 엄연하게 존재한다. 정치인이 금배지를 단다는 것은 국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들겠다는 서약을 뜻한다. 하지만 그 금배지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그 이익을 보호해 줄 세도가에게 ‘지치(舐痔)’하여 ‘득거(得車)’할 요량이라면 지금 당장 천리를 떠나(速去千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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