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헌(文井軒)’이 뭔지 생소한 시민들이 꽤 있을 것 같다. 문정헌은 ‘국제펜대회 기념도서관’이다. ‘제78차 국제PEN대회’가 2012년 9월 9일~15일까지 경주시에서 개최된 것을 기념하고자 경주시와 ‘국제PEN 한국본부’가 2013년 6월 설립한 시설로서, 대릉원 북문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기념도서관을 운영하되 북카페 형식의 문화공간으로 꾸며서 관광객이나 주민들이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문필가들의 단체인 ‘국제PEN’은 1923년 영국에서 창립되어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국제PEN대회를 열고 있다. 1970년 제37회와 1988년 제52회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한국에서 세 번째로 2012년 제78차 대회가 경주에서 열렸다. 펜(PEN)은 문필가를 뜻하며 그 중 P는 시인(poets), E는 수필가(essayists), N은 소설가(novelists) 등을 의미한다. 경주 국제PEN대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2명(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 나이지리아 소설가 ‘월레 소잉카’)을 비롯하여 76개국에서 400여 문인들이 참가하여 시민의 참여 속에 강연, 문학 포럼, 전시회, 공연, 북(Book) 사인회, 시낭송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문정헌 건물이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의 정비 일환으로 조만간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2023년을 기한으로 문정헌의 북카페가 영업을 마감했다. 경주시가 장기적인 안목없이 ‘국제펜대회 기념도서관’을 만듦으로써 건립 10여년 만에 기념도서관의 존폐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현 위치에 기념도서관을 존속시키기 어려우면 기념도서관 이전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 건물은 이전되었을 때 의미가 반감된다. 건물의 건립 연대가 오래되어야 역사적 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건물의 건립 연대가 오래지 않아도 역사적 사건이나 의미가 담긴 건물은 역사적 문화자산으로서 존속 가치가 있다.   정비 대상 지역과 건물이라는 제약을 안고 건립되었지만 국제펜대회 기념도서관은 역사적 실체가 되었고, 이제 경주의 문학명소로 소중한 문화자원이자 관광자원이 되었다.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 위치한 ‘누리마루(2005년 APEC 정상회의 개최장소)’는 부산의 소중한 문화관광자원이며 부산시민의 긍지를 표상하는 곳이다. ‘문정헌’도 2012년 국제펜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상징물이다.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경주에 개최하려는 주요한 이유도 성공적인 개최가 경주의 도시 위상을 끌어올리고 경주시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정상회의 개최장소가 기념비적인 상징물로 경주의 새로운 문화유산 및 관광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정헌’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보다 존속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이유와 근거가 훨씬 더 많다. 문정헌은 한옥으로 사적인 ‘대릉원 일원’과 잘 어울린다. ‘대릉원 일원’에 문정헌이 존속하면 경주가 신라시대의 문화유산만이 아니라 21세기 문화유산도 풍부하게 갖춘 도시임을 시민과 관광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 문정헌의 존재로 이 일대가 고대와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 된다. 북카페 형식의 기념도서관은 대릉원, 금관총 보존전시관, 신라고분정보센터 등을 찾은 관광객에게 휴게 공간 및 만남의 장소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황리단길을 찾은 관광객을 도심으로 유입시키는 중간 거점도 된다. 신라시대 유물・유적 중심의 경주에 조선시대의 옥산서원・양동마을・용담정 등의 문화유산이 소중한 것 못지않게 시내 중심가에 있는 ‘문정헌’은 국제펜대회의 개최를 기념하는 건축물로 귀하게 다뤄져야 한다. 국제펜대회를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것은 경주시민의 자랑이며 긍지이다. 더 나아가 문정헌은 경주와 세계를 연결하고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상징적 고리이다.   문화도시는 공연과 전시가 많이 개최되는 도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와 관련된 역사적 장소와 상징물도 문화도시의 중요한 요소이다. ‘문화도시 경주’를 위해서 그리고 경주의 3대 도시 브랜드의 하나인 ‘천년도시 경주’를 위해서도 문정헌의 현 위치 존속이 필요하다. 천년도시는 천년수도였던 도시로서 전통이 살아있고 그 전통이 현재와 미래의 발판이 되는 도시이다. 문정헌은 신라시대 중심의 경주를 넘어 21세기까지 신라문화의 융성이 계승됨을 보여주는 실체이다. 문정헌 존치를 위해 경주의 문학인과 예술인뿐 아니라 시민들 나아가 경주시・경주시의회 등 관계 기관과 부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주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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